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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권불감증의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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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권불감증의 사례들

입력
2006.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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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의 여대생인 A는 요즘 버스 타는 것이 두렵다. 버스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갖다 대면 나오는 '청소년입니다'라는 신호음이 자신의 이마에 찍히는 낙인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은 이런 A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A의 고충은 간단히 넘길 수 없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권불감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교통카드 대면 "청소년입니다"

'청소년입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버스에 오르면 승객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A를 보고 수군거린다. "청소년 꼴이 저게 뭐야" "웬 늙은 청소년?" "요즘 애들은 키도 크단 말이야" …. 아마도 고등학생쯤으로 여기고 내뱉은 말들이겠지만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잘못도 없이 생면부지의 승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이유는 전혀 없다. 심성 약한 A에게 이런 수군거림은 명백한 폭력이고 모욕이며, 소송하면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서울시가 2004년 7월 교통카드 인식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이와 같은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 신호음이 청소년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권불감증의 발현이다.

'지금 버스에 오른 사람은 요금 할인을 받는 청소년이니 정상요금을 내는 성인들은 절대 자리를 비켜주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라면 다른 승객에게 청소년 여부를 확인시켜줄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승객이 버스를 이용하는 행위는 두가지 의사 표시가 합치된 법률행위인 계약체결 행위이다. 버스가 승객을 향해 출입문을 여는 것은 '요금을 내면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청약의 의사 표시이고, 승객이 버스에 오르는 것은 '요금을 내고 이용하겠다'는 승낙의 의사 표시이다.

청약과 승낙이 부합했다면 승객은 요금을 내는 것으로, 버스는 목적지에 이르러 출입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모든 계약관계는 종결된다.

'청소년입니다'라는 신호음은 청소년 여부를 확인하라는 서울시 또는 버스회사의 운전기사에 대한 내부지시 사항에 불과한데, 이런 내부지시 사항은 단순히 '딩동댕' 신호음을 내거나 운전기사만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택하면 되지 굳이 모든 승객이 듣도록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하여 가슴을 만졌다"는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발언도 인권불감증을 드러내는 것이란 점에서 동일한 맥락이다. 우리 사회 권력자인 신문기자를 건드려 놨으니 최 의원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는 십분 이해할 수 있으나 이런 말을 변명이라고 내뱉는 그 저급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급기야 한국음식점중앙회가 발끈하여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의원 직을 사퇴하라는 분노를 표출했다. 이제 최 의원은 "아~ 또 실수, 종업원으로 착각했다"고 변명할 텐가.

물론 최연희 사건의 발단은 성추행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성추행은 형사처벌이 뒤따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강제추행을 처벌하도록 한 것은 가해자의 인격과 도덕적 양심만으로는 피해자 양산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이 죄"라며 술잔을 깨뜨리거나 당직을 사퇴하더라도 그 죄책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최 의원이 강제추행죄로 처벌을 받더라도 최 의원의 위 발언 문제까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 의원의 발언은 '음식점 주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또 다른 법률적, 도덕적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성추행 해놓고 "음식점 주인 착각"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그 본 바탕이 드러난다고 한다. 궁지에 몰린 최 의원의 발언은 그의 인격적 수준과 반인권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고, 이런 자격 미달이라면 당연히 국회의원으로 뽑지를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국회의원인 것을.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선택은 최 의원 스스로 의원 직을 내놓는 것 이외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몰상식은 그가 의원 직을 사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아니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송호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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