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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히말라야로 떠나는 사람들/ 웅장한 자연, 무소유의 삶…"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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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히말라야로 떠나는 사람들/ 웅장한 자연, 무소유의 삶…"아, 부끄럽다"

입력
2006.03.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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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나 히말라야 여행이 특별한 것은 중독성에 있다.

낯설음을 찾아 나서는 게 여행이지만 인도, 네팔, 티베트의 그것은 더 특별하다. 현지에서 부닥치는 문화적 충격에 가슴앓이를 하게 되고 내 안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인도, 히말라야 여행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인도와 네팔, 티베트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인생관까지 바꾸는지. 또 어떤 매력이 있어 끊임없이 찾고 또 찾게 만드는지를.

인도

인도 5,000년 역사의 문화 유적과 자연은 보는 이에게 황홀함을 선사한다. 곳곳에 널려있는 유적은 규모나 기교에서 로마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타지마할, 카주라호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잘 보존된 자연생태환경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정작 인도를 다녀온 이들이 인도병에 빠지는 것은 거리에서 만나는 인도인들 때문이다. 지상 최고에 근접한 부귀영화와 지상 최악에 가까운 빈곤이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곳, 포장되지 않은 삶의 원천적인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땅이 인도다. 이곳저곳 돌아다닐 필요조차 없이 거리 한곳에 서서 지나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그의 인생이 한눈에 읽힌다고 한다. 생로병사와 삶의 흐름이 길 위에서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최악으로 보이는 상황인데도 인도인들의 눈부신 미소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허비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일상 생활에서 느꼈던 빈곤감, 박탈감, 억압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

네팔

인도의 자연이 광활하다면 네팔은 웅장하고도 아기자기하다. 세계 최고의 지붕 히말라야는 에너지, 기(氣)가 뭉쳐있는 곳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만년 설산에는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로 솟구친 웅장한 설산을 목격하는 순간, 그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사람들은 그냥 땅에 주저앉아 전율하게 된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자연과 나누는 원초적 교감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에 귀의하게 한다.

네팔의 산하는 강원도 산골과 많이 닮았다. 산은 웅장하나 산자락이 품은 마을의 풍경은 아기자기하다. 그곳에 사는 순박한 네팔인들도 친근하다. 주어진 일에 만족하며 욕심부리지 않는 네팔인들에게서 사람들은 깊은 울림을 얻는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별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어떤 이는 “히말라야 별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별들 사이에서 하늘을 본다”고도 했다. 안나푸르나 밑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포카라는 1960~70년대 전 세계 히피들이 모여 낭만을 노래했던 곳이다. 네팔의 자연은 그들에게 지상천국이었다.

티베트

같은 히말라야 자락에 있어도 티베트의 풍경은 네팔과 또 다르다. 산은 높고 고원의 벌판은 드넓다. 칼끝을 대면 파란 물이 금방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 땅은 텅 비어있다. 바람 가득한 고원의 황량함이 매혹적이다. 그래서 티베트의 아름다움을 ‘황량미’(荒凉美)라 부르기도 한다.

티끌 없는 하늘, 거침없이 쏟아지는 태양 아래 숨어있을 곳이라곤 없다. 허위, 가식이 없는 벌거벗겨진 세상이다. 맑기 그지없는 티베트인의 심성과 ‘오체투지’ 등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종교에 대한 믿음은 이런 자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티베트를 사랑한 한 외국인 여행가가 겪은 일화 하나. 사원을 순례하는 이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하루종일 굶은 한 여인에게 누군가 빵 한 덩어리를 줬다. 여인은 빵을 먹기 전에 먼저 빵 한 조각을 떼어 옆에 있던 강아지에게 나눠줬다. 티베트인들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중국의 지배를 받는 티베트에서 한국인들은 망국의 슬픔을 읽는다. 우리가 일제시대를 오버랩하며 분노할 때 되레 티베트인들은 무관심하다. 그들의 생의 호흡은 길다. 긴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피지배’라는 현실은 순간일 뿐이다. 자연과 종교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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