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팀이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골든 볼의 영광을 차지한 독일의 올리버 칸, 스페인과의 8강 전에서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 한국의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이운재처럼 골문을 지배하는 수문장에게도 손에 닿지 않는 공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팀 공격수가 자신이 지키는 골문에 마구 볼을 차넣어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제2회 세계일보 문학상 수상작인 박현욱 씨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는 그런 골키퍼 같은 남자의 자발적 고난의 일기다.
‘일부다처제’는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아라비안나이트 속 어느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남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정반대의 악몽이 현실로 다가온다. 애인도 아닌‘아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정말 결혼했다. 남편과 이혼도 하지 않은 채‘다른 놈’과. 선사시대에나 있는 줄 알았던‘일처다부제’를 아내가 몸소 실천한 것이다.
연애시절 프리섹스를 당당하게 주장했던 아내에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처럼 구속 없는 사랑을 약속했던 그는 레드카드(이혼)를 받지 않기 위해 그 결혼을 묵인하고 만다. 집안을 말아먹은 바람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벌을 대신 받는 심정으로….
이야기는 처음엔 사랑, 다음엔 가족으로 이어지는 사건과 인물의 인식의 흐름을 따라 사회학, 인류학, 생물학 등의 풍부한 자료와 학설을 동원해가며‘일처다부제’의 불편한 세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거기에 축구의 유래와 토막 지식, 그리고 홍명보와 차범근, 펠레, 마라도나, 지단, 호나우두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일화와 명언들을 끼워 넣어 월드컵을 앞둔 독자들에게 짭짤한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진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이들의 사랑을 통해 그는 “사랑과 이해를‘투톱’으로 세워,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견고한 아집의 빗장 수비를 뚫고 행복의 ‘골’을 성공시킬 수 있는 감독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김승균기자 lib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