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_인도 핵 협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30여년 동안 핵 독자노선을 걸어온 인도가 과연 실질적 핵 사찰을 받겠느냐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바라는 핵 투명성, 핵 비확산에 대한 인도의 거부감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2일 체결된 양국 핵 협정은 미국이 민간 핵 기술과 연료를 지원하고, 인도는 민간 핵 시설의 사찰을 수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많은 논란 속에 협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미가입국인 인도를 국제기구 틀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핵확산 금지 체제를 강화시키는 시의 적절한 조치”라고 반겼다.
그러나 사찰의 실효성 문제는 미국의 이중적 핵 정책과 함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협정에서 인도는 22개 원자로 가운데 당장 4개를, 2014년까지 모두 14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개방키로 했다. 그러나 핵무기 프로그램 뿐 아니라 원자로 3분의 1은 군사용으로 인정, 사찰대상에서 제외했다.
사찰 제외 원자로에는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고속 증식로 2개가 포함돼 있다. 핵물질이 무기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찰이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점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약속이란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번 협상에서 급한 에너지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인도의 버티기는 의외였다. 고식증식로만 해도 미국은 사찰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인도의 입장은 완강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문제를 인도의 높은 자존심과 연결지어 분석했다. 인도 언론들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았다. 힌두쿠시 타임스는 “인도는 핵무기와 성장하는 경제, 미국을 위시한 세계의 견제를 물리친 자존심 있는 국민”이라고 보도했다.
인도는 1974년 핵 실험 이후 독자노선을 걸어 24년 뒤인 98년 5월 핵무기 실험을 했다. 핵 강국 대열에 오른 인도는 핵 물질과 무기를 계속 비축, 4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인도 과학자들은 협정이 인도 주권과 핵무기 자율권을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조지 페르코비치 카네기 국제평화 재단 부이사장은 이러한 인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선물만 안겨준 협정에 대해 ‘산타클로스 협약’이라고 했다.
미국의 접근에 대해 인도인들의 감정은 복합적이고 이중적이다. 지난 주 인도의 잡지 ‘전망’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인도의 친구라고 말했다. 이는 세계 각국의 부시 지지도 중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깡패국가’라는 답변은 이보다 많은 72%에 달해 인도인들은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외교정책을 별개로 취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이란이 뭘 보고 배우겠냐" 美 국내 비판여론
미국과 인도가 2일 타결한 핵 협력 협정의 앞날은 순탄치 만은 않다. 무엇보다 미국 내 의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에드워드 마키(매사추세츠) 하원의원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에 대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 준데 대해 “미국 스스로 규범을 깨뜨리고 나서 이란에 대해 그것을 지키라고 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도가 보유한 22개의 원자로 가운데 14개에 대해서만 사찰을 허용키로 한데 대해서도 ‘무의미하다’는 혹평이 쏟아진다.
로버트 아인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인도가 사찰을 받지 않는 원자로를 이용해 무엇을 하느냐이다”면서 “인도는 군수용으로 분류된 고속증식로를 통해 핵 무기고를 늘릴 수 있는 플루토늄을 다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핵무기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고 핵 기술도 이전받을 수 있게 된 점에 있어서 인도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번 협정에 따라 관련된 미 국내법을 수정하고 협정 자체에 대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도 쉽지않은 과제다. NPT 비가입국에 대한 핵연료 공급과 핵관련 투자를 금지한 국내 ‘원자력법’을 당장 개정해야 하는데 전망이 불투명하다. 인도와의 협상 경과를 지켜보며 판단을 유보했던 의원들 사이에서 부정적 기류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변수다.
핵확산 방지를 목표로 핵기술 및 핵물질 이전을 통제해온 35개 ‘핵 공급국 그룹’의 이해관계를 미국이 어떻게 조화시켜 낼지도 문제다. 핵공급국 그룹에 포함된 중국이 이미 부정적 견해를 밝혔을 뿐 아니라 내부 토론 과정에서 이해가 엇갈려 돌출변수가 튀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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