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고구려사 / 마다정 등 지음ㆍ서길수 옮김 / 사계절 발행ㆍ3만8,000원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부였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2003년 국내에 소개됐을 때, 우리는 좀 어이가 없었다. 수를 물리치고 당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 고구려가 중국이라니…. 하지만 중국은 동북공정을 포기하기는커녕 집요하게 몰아붙여서 지안, 환런 등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켜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동북공정의 이론서가 번역돼 나왔다. 사계절 출판사가 옮긴 ‘동북공정 고구려사’로 동북공정을 추진한 중국사회과학원의 첫 공식 종합보고서다. 저자는 중국사회과학원 학술위원회 위원이자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연구원인 마다정(馬大正), 변방사지연구중심의 리다롱(李大龍), 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 겅톄화(耿鐵華), 동북사범대학역사학과 부교수 권혁수(權赫秀) 등이다. 번역은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했다.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동북공정의 근거가 되는 이론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고구려를 어떻게 자기 역사에 포함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몇 백 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 년이라고 해도 좋다. 청나라 영토 범위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소수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며, 소수민족과 연관된 주변 국가의 역사 또한 중국 역사라는 것이다.
책은 중국이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예속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구려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에 뒀다고 한다. 고선지 장군 등 고구려 유민이 중국의 통일 대업 완수에 공헌했는데, 이는 고구려인이 중국과 같은 역사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멸망한 고구려인 대부분이 당 왕조의 백성이 됐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고구려가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 즉 한나라에 건국했기 때문에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도 책에 등장한다.
고구려는 또 신라와 백제, 특히 신라가 북으로 확장하려는 욕망을 저지하고 중국의 전통 강역(疆域)을 보전하는데 일조했다고도 적었다.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이것도 모자라 고조선을 분봉제라는 지방행정관리체제 아래 있었던 지방정권으로 규정, 고구려뿐 아니라 이전 고조선의 역사까지 침탈하려 든다.
동북공정을 뒷받침할 그럴듯한 이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독자라면, 이 같은 내용이 어이없을 것이다. 주장의 근거도 취약하고, 중국에서조차 소수 의견에 그친 것이 많다. 그래서 옮긴 이는 ‘고선지는 고구려 장수가 아니라 당나라 장수이고, 고구려가 건국한 곳은 현도가 아니라 부여 땅이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옮긴 이에 따르면 저자들은 고구려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책을 쓴 이유는 동북공정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추진됐기 때문이다. 학문적 완성도 측면에서 보자면 무시해도 좋지만, 책은 아직 중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중국 전통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을 대신해 소수민족이라는 표현을 쓴다. 화이사상은 한족과 한족 이외의 민족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책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서길수 교수는 “중국의 역사인식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개탄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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