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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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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왕의 남자'

입력
2006.03.0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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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영화 두 편이 극장가에 나란히 걸렸다. 최다관객 기록으로 성큼 다가서는 ‘왕의 남자’와 미국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1,100만 명이 넘게 보았으니 ‘왕의 남자’ 소개는 새삼스럽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후보라는 점만으로도 마음을 흔든다. 광고문도 서정적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와 맑고 깊은 계곡,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 노니는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 그 곳에서 만난 두 목동이 서로에게 끌리다가 동성애로 발전했으나, 20년에 걸친 그들의 관계는 사회적 편견 속에 침몰하고 만다는 애달픈 영화다.

▦ 왕과 천민의 어울림, 광대문화의 재조명 등 다양했던 ‘왕의 남자’ 관점도 점차 동성애 쪽으로 휩쓸려 가는 느낌이다. 처음 광대 장생 역을 맡은 감우성의 강렬한 카리스마적 연기에 열광하던 젊은 관객의 반응은 이제 공길(이준기 분) 역이 주는 여성적 남성상에 더 매혹돼 가는 듯하다.

미국 AP통신도 한국에서 ‘왕의 남자’가 크게 성공한 것을 한국이 동성애에 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변모해가는 현상으로 해석, 보도한 바 있다.

▦ '왕의 남자’의 흥행은 아직 순조롭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중순께 ‘태극기 휘날리며’의 1,174만 명을 넘어서 신기록이 세워진다. ‘왕의 남자’가 지닌 영화사적 의미는 다르다. ‘태극기…’와 ‘실미도’는 무거운 주제를 무겁고 깊게 다뤄 성공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날 겪게 되는 이념의 억압성과 개인적 불행을 추적하여, 그 허구성을 고발하는 실존주의적 영화들이다.

풀어야 할 주제이긴 했다. ‘웰컴 투 동막골’에 이르러는 한결 무게가 줄었다. 이념을 얘기하되 엄숙한 직접어법을 피했다. 판타지라는 은유로 관객에게 다정하게 다가갔다.

▦ ‘왕의 남자’는 더 전진했다. 진지하고 깊은 주제를 유지하면서, 가볍고 발랄하게 요리하는 기술을 터득한 셈이다. 소재가 동성애인가, 왕과 광대의 몰락이 가져온 비극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물을 보는 지평을 넓혔고, 시선이 가볍고 넓어지자 표현이 다양해졌으며, 그것은 영화의 완성도로 연결되었다. ‘왕의 남자’로부터 우리는 어떤 소재든 적은 비용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점이 기억돼야 한다.

박래부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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