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국시조' 강우현
“놀러 갔다가 사장되는 거 아세요? 2000년 12월 마지막 날이었어요. 아들 준수랑 남이섬에 놀러 왔다가 졸지에 이 섬의 대표를 맡게 됐으니까요.”
㈜남이섬 대표 강우현(53)씨. 49세가 되던 해에 그는 모험을 택했다. 대학교수를 버리고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섬지기에 더 끌렸던 이유는 바로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는 강 대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남이섬을 만든 에너지이기도 하다.
남이섬은 폐기될뻔한 휴식처였다. 수도권에 마땅한 나들이터가 없었던 1960~70년대에는 가족 단위의 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 대학생 MT, 직장 단합대회 등의 장소로 이용되면서 고난을 겪었다.
젊음을 불태우는 곳이 아니라, 그 찌꺼기를 토해내는 거칠고 불결한 곳으로 전락했다. 그곳에서의 추억을 가진 모든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거의‘난지도’가 되어가던 2001년 그가 섬을 맡았다. 섬은 요술에 걸린 것처럼 갑자기 다른 소리로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여가 흘렀다. 연 30만 명 정도였던 입장객은 2002년 67만 명을 넘었고 매년 수직에 가까운 증가율를 보였다. 요즘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1만 명 정도는 기본이다.
찾는 이들도 다양하다. 흔히 ‘남녀노소’라고 한다. 남이섬의 입장객에게는 이 말에 ‘각 국의’라는 세 글자가 더 붙는다. 대한민국 땅에 이런 여행지는 흔치 않다. 젊은 연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다.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비결을 물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남들은 혁명이라지만 사실 이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이죠. ”
강우현 대표는 지금 ‘혁명다운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남이섬에 대한 그의 궁극적인 꿈은 ‘동화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나라를 세우고 있다. 국호는 나미나라 공화국. 3ㆍ1절인 1일 독립을 선언했고 4월 22일 개국한다. 섬나라 ‘나미나라’는 어떤 나라가 될까.
그는 남이섬의 별밤과 달밤, 물안개, 쓰레기에 반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거리는 큰 별들은 그를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래 머물며 곳곳에 버려진 나무를 주워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빈소주병을 모아 조각품도 만들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땅주인 민웅기씨가 “섬에 남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단 아무 방이나 골라 집을 수리하고 그 주변부터 가꿨다. 8개월이 흐른 2001년 9월 1일 그는 남이섬을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월급은 딱 100원. 그리고 섬을 도화지 삼아 ‘자유’롭게 그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남이섬은 직원 26명, 매출 20억 원, 인건비 5억 원, 은행 빚 60억 원으로 화장실 하나 고칠 엄두도 낼 수 없는 형국이었다. 낡은 것을 바꿀 기술과 자금은 없었고 섬을 팔아 먹으려는 브로커들로부터 매일 전화가 걸려왔다.
“도저히 견적이 안 나왔어요. 직원들에게 ‘이렇게 해보자’라고 제안하면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도 그거 다 해봤어요’ 였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청개구리 경영법이었죠. 그들이 해봤다는 것의 반대로만 하는 거예요. 직원들도 재미있어 했지만 찾아오는 분들도 맘에 들어 하더라고요”
대표가 되고 나서 경찰서를 80번이 넘게 들락거렸다. 전과 6범이다. 쓰레기 무단투기, 폐기물 관리법 위반, 영업 방해 등이 죄목이다. 과거의 쓰레기가 지은 죄를 그대로 덮어썼다. 야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장한 청년(?)들에게 끌려가 죽을 뻔한 적도 있다. 강물에 던져지고 발로 차여 숨이 막히려던 차에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쳐 겨우 살았단다. 그래도 자유에 대한 믿음으로 밀어붙였다.
“지금까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100원을 받는 대신 내가 하는 일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이것저것 얘기해도 이해를 못하니까 말도 안하고 한 것도 많아요.
지금은 내가 땅을 파고 있으면 직원들이 ‘아, 뭔가 또 나오겠구나’ 한대요.” 자신도 우스운지 씩 웃고 만다. 대표를 맡은 지 1년 만에 은행에 입금된 돈은 정확히 1,200원이었다. 이자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은행직원이 “통장 값도 안 나온다”며 기막혀 하더란다.
그는 1991년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이섬을 동화의 나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그는 과연 좋은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했다.
“내 아들한테 물어보면 제일 정확할 텐데 군대에 있어서 전화연결을 시켜줄 수도 없고…. 난 그 아이의 상상을 침해하지 않아요. 그 아이만의 세계, 그의 우주를 존중합니다. 우리집 가훈이 뭔지 아세요? ‘나 강준수의 아버지로써 너 쪽 팔리게 안 할 것이며 너 강우현의 아들로써 나 쪽 팔리게 하지마’ 예요.” 좋은 아버지로서 자신 있는 듯 했다.
그는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이처럼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1년 365일이 어린이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쓰레기통 앞에서 만나 나미나라 공화국 국민가수로 전격 캐스팅한 이소윤(12)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활용품으로 뭔가 만들고 있는데 예쁜 꼬마가 옆에 와서 말을 시키는 겁니다. 자긴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되고 싶다고요. 그래서 해보라고 했더니 정말 노래를 환상적으로 하는 거예요. 나미나라 가수를 시켜주겠다고 말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는 겁니다. 아마 그 친구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할거예요. 꿈은 이렇게 심어주는 것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북 단양의 작은 산간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4년 반 만에 완전 남이섬 사람이 돼버렸다. 서울 문정동에 있는 집에는 1주일에 이틀만 들어가고 낡은 집을 손질해 만든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딱 2010년에 이곳을 떠날 겁니다. 그때쯤이면 30년 이상은 버틸 만큼 닦아놓을 자신이 있으니까요.”
▲ 강우현은…?
본업은 그림동화작가이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 전공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기업이미지 디자인,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프랑스 ‘칸’ 영화제 포스터를 비롯한 국내외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재생공책 보급과 재생지 쓰기 등 환경운동에도 관여했으며 KBBY, YMCA, YWCA, UNICEF 등을 통해 국제문화교류에 앞장서 왔다. 일본 NOMA 그림책원화콩쿠르대상과 체코 BIB-89 금패상, 환경문화예술상, 일본고단샤출판문화상, 어린이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 여기는 남이섬 나미나라/ 어떤 나라?
● '1차 정년 55세ㆍ2차 정년 80세 제도화,
● 일용직ㆍ단기 계약직으로 신분보장,
● 본인 칠순과 팔순 휴무 실시ㆍ경조금 지급,
● 일하는 모든 사람의 월급 100만 원 이상,
● 학력ㆍ성별ㆍ국적 안 따지고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모두 고용'
이쯤 되면 “야, 거기 어디야? 나도 거기 가서 살자” 란 말이 나올 법하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이 정도 조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테니까.
혹시 그 좋다는 호주? 아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춘천시 청평호에 반달 모양으로 떠 있는 14만여 평의 섬나라 ‘나미나라공화국(Naminara Republic) ’. 지금껏 남이섬으로 불려오던 이곳은 2006년 3월 1일을 기해 독립을 선언하고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남이섬이란 이름은 조선 세종 23년 모함으로 처형된 남이 장군의 묘소가 있어 그의 이름을 땄다. 나미나라도 남이장군의 이름을 발음 나는 대로 옮겼다.
나미나라는 내각 책임제로 운영된다. 국가 원수의 호칭은 아직 미정이지만 외교부장과 제1문화부장 등은 이미 내정된 상태다.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와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작곡한 유명한 중국 민족음악가 류홍쥰(劉廣軍)씨가 제1문화부장을, 한국 생활 25년째인 미국인 수잔나씨가 외교부장을 맡기로 했다. 파키스탄과 미얀마 등지에서 국제 NGO활동을 하고 있는 교육전문가 타지마신지(田島伸二)씨는 국제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다.
1년에 30개국 이상의 인종이 방문하는 곳인 만큼 내각은 국적을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로 임명되고 최소 20개국 이상의 대사도 임명할 계획이다.
이 뿐인가. 이 나라에 들어오려면 여권도 필요하다.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해야 하고 이 나라 돈으로 환전도 해야 한다. 우표, 국제 전화카드까지 만들 생각이다. 나미나라와 외교를 맺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비자면제 혜택도 주어진다.
이쯤에서 나미나라 공화국 독립선언서를 한번 훑어보자.
우리는 나라를 세웁니다.
노래의 섬 남이섬에 동화나라를 세웁니다
동화(同化)되고
동화(同和)되어
동화(童話)를 쓰고
동화(童畵)를 그리며
동화(動畵)처럼 살아가는
동화세계를 세웁니다
행복한 사랑이 머무는 북한강 남이섬 위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인간의 숨소리와 하나되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의 섬 음악의 강
이세상에 하나뿐인 대한민국 속의 꼬마나라
상상과 창조의 자유가 어린 꿈을 되살려 주는 땅
나미나라 공화국이 남이섬에 태어납니다
남이섬에서는 모두 나미나라 국민입니다.
그렇다. 나미나라 공화국은 동화나라다. 꿈을 잃지 말고 실현시키자는 것이 이 나라의 꿈이다. 이 나라 주인공은 어린이만이 아니다. ‘나이 들어 못한다’는 말이 습관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한국의 어른들까지 포함된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나미나라 공화국. 똑같은 일상에서 지쳐간다면 이곳에서 한번 다른 꿈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나미나라 공식 개국일은 4월 22일, 새 국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전야제는 4월 21일 14시 21분에 열린다. 이날 40여 개 국이 참가하는 ‘세계 책나라 축제’도 오픈해 국가홍보관 형식으로 각 나라의 책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한다. 이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 음악인들이 나미나라 국가를 연주하고 류재수 원화전과 세계어린이책도서전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함께 펼칠 예정이다. (031)582-5118
조윤정기자 yjcho@hk.co.kr
■ 재활용 천국
난지도가 돼 가던 남이섬을 한해 167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어떻게 탈바꿈 시켰을까?
2000년 12월, 강우현씨가 아들과 남이섬을 찾았을 때 숙박손님은 그들뿐이었고 그 달 수입은 2,500원이었다. 몇 개 있지도 않은 업소 직원들은 고객을 본체만체했고 나무는 그저 직선으로 멋없이 쭉쭉 뻗어있었다.
대표가 된 강씨는 일단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더 이상 빚을 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핵심은 재활용. 버리는 물건을 자재로 활용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가르쳐서 썼다.
먼저 자연을 망가뜨리는 철재나 지저분한 천막들을 치우고 거짓말하거나 고객에게 바가지 씌우는 업주들을 내보냈다. 처음 세운 3가지 목표는 ‘유원지를 관광지로, 소음을 리듬으로, 경치를 운치로’ 였다.
남이섬에서는 고물(古物)이 빛을 발한다. 이곳에 놓인 물건 중 어느 하나도 새것이 없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과 유진이 걸었던 메타세콰이어 숲 길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에는 하나같이 문고리가 달려있다. 폐가(廢家)의 문으로 만들었기 때문. 통일성 없는, 그래서 개성이 있는 벤치와 조형물도 버리는 건축자재로 만들었고 대형 알루미늄 인물상은 음료수 캔과 철거된 나이트클럽 자재로 완성했다.
사진 찍으려고 줄을 잇는 4m짜리 멋스런 대형 비올라는 다방에서 쓰던 낡은 원목 테이블이 변신한 것. 섬 안의 명소 ‘이슬공원’에 놓인 분수대는 샤워꼭지를 뒤집은 것이고 호수 뒷벽면의 녹색 유리는 가까이 가서 보면 빈 소주병들로 확인된다. 또 다른 술병은 꽃병으로 둔갑했고 거둬낸 천막은 연못 바닥재로 썼다.
굴러다니는 돌맹이에 유명인이 몇 줄 낙서만 끄적여도 금새 예술품이 됐다. 간판도 제멋대로다. 버려진 나무 위에 갈겨쓴 글씨가 제 각각이다. 겨울에 춥다고 남들은 분수를 정지시키지만 남이섬에서는 더 크게 가동한다. 몇 시간 만에 멋진 얼음산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쓰레기만 모아 만든 정원이 한류관광지의 중심이 돼 버렸다.
남들이 안 하거나 못하는 것, 그게 ‘남이섬식’이다. ‘청개구리 경영’, ‘꼴찌 경영’, ‘상상경영’이 그것들이다. ‘고객은 나를 따라오지 않고 세상은 책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강우현 대표의 생각이다. 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마케팅’이나 ‘콘텐츠’ 같은 용어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해 봤을 뿐이다.
다행히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그게 기뻐 아이처럼 흥분해 또 만들고, 만들어간다. 시스템보다는 사람을, 돈보다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남이섬 직원 90여명은 입은 모은다. 이제야 큰 그릇이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이제 좋은 음식을 담을 일만 남았다.
지난해 관광객 167만 명이 다녀간 남이섬의 올해 목표는 200만 명. 이번에도 남이섬식 유치방법을 쓸 계획이다. 방문하는 100만 명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면 그들이 한번씩은 다시 올 것이란다. 그것도 최소 한 명씩은 더 달고….
조윤정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