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달 초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부과됐던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에 대한 부양책임을 사회가 나눠 맡는 것을 골자로 한 '노인수발보험법' 제정안을 확정, 2008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노인 보살핌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공적 장치를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제도 시행에 앞서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정부가 확정한 노인수발보험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실제 혜택을 받는 노인의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급여대상자를 중증 대상자로 제한함으로써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은 전체 노인 인구의 3.1%, 노인수발보험 가입자의 0.5%에 불과하다.
이는 사회보험을 통해 노인수발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제도 도입의 목적은 물론 실효성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노인들에게 실직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급여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노인수발보험제도 시행의 또 다른 문제는 노인 수발을 위한 공적 인프라 부족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노인성질환 전문병원 등 노인 수발에서 공적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시설서비스의 경우 차상위계층과 일반노인의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11년 '요양 인프라 구축 계획'이 완성된 후에도 공적 부문은 시설서비스의 70%, 재가서비스의 23%만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노인수발보험 제정안에 공적 수발시설 설치에 관한 국가의무를 명시하지 않은 점, 또 국가의 재정부담에 대한 언급 없이 지방자치단체에 수발시설을 늘리도록 한 것도 문제다.
이는 보험 가입자 및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 수발을 위한 공적 서비스 부족이 심각할 것으로 예견된다.
공적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면, 수발이 필요한 노인들은 민간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건강보험과 보육서비스의 공적 인프라 구축 실패로 인해 우리 사회가 이미 경험했던 '이용자 선택권 제한'의 문제를 답습할 것으로 우려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과정을 무시한 점도 문제다. 그간 시민사회단체 및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3년에 걸친 논의를 해왔음에도 정부는 법안 공개 직전에 기존의 장기요양보험 대신 노인수발보험으로 급선회하는 등 일방적인 조치를 취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강조해 온 정부가 고령사회 대책의 핵심인 장기요양제도에 대해서는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문제가 있다.
노인수발보험제도는 이처럼 노인 보살핌의 사회화라는 목적을 상실한 채 조산됐다. 조산된 정책을 시행하도록 종용하기에 앞서 인큐베이터 안에서 성장하기를 기다릴 줄 아는 정부의 상식을 기대해 본다.
최혜지<서울여대 인간개발학부 사회사업전공 교수>서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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