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3ㆍ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던진 메시지는 실천이다.
노 대통령은 “일본이 이미 사과했다”면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에 합당한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더 이상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겠다”고도 했다. 이는 일본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쟁을 반성하라는 촉구였지만, 그 행간에는 일본 지도자들의 변하지 않는 태도와 저열한 역사 인식에 대한 체념과 실망이 가득 깔려 있었다.
그런 실망감은 “지난 1년 동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일본 지도층의 신사참배는 계속되고 있고 독도를 강점한 날까지 기념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신사참배는 전쟁 반대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궤변을 적시하며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당사자의 해명이 아닌 객관적 성격에 의해 평가된다”고 비판한데서도 분노를 넘어선 염증이 읽혀진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ㆍ1절 기념사에서 배상을 요구하고 3ㆍ23 선언에서는 각박한 외교전쟁을 거론하며 “뿌리를 뽑겠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년 3ㆍ1절 기념사에서는 지난해 같은 공세적 표현은 없었다.
이런 변화는 아무리 으름장을 놓더라도 일본이 반응하지 않으면 말한 쪽이 오히려 우습게 되는 현실을 직접 겪은 탓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일본 지도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진심이 담기지않은 사과를 얻어내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대신 일본의 실리에 호소했다. 이성(理性)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전쟁 반성과 실천이 왜 일본에 유리한지를 차분히 제시했다.
그것은 일본이 열망하는 보통국가,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려면 법 개정이나 군비강화가 아니라 인류의 양심과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 출발은 전쟁을 반성하는 실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실천의 구체적 내용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신사참배 중단,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이 실천의 골간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지난해 제시했던 ‘과거 진실 규명_사과와 반성_배상_화해’라는 4단계 해법도 그대로 유효하다.
따라서 일본 지도층이 이런 실천을 보이지 않는 한 한일관계는 크게 진전되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결정한 ‘필수 불가결한 외교교섭과 선택적 외교행위’의 분리대응 방침도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경제 및 문화예술 교류는 필수적 분야로 지금처럼 이루어지겠지만 한일 정상의 셔틀회담은 선택적 사항이기 때문에 열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실질적 측면에서 별다른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같은 정치적 행위는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정부의 입장인 것이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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