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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낙제소녀, 스윙걸즈/ 엉뚱…발랄…초특급 '폭소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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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낙제소녀, 스윙걸즈/ 엉뚱…발랄…초특급 '폭소연주'

입력
2006.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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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고 기발한 영화들은 많다. 끊임없이 웃겨주는 유쾌한(혹은 유쾌하다고 알려진) 영화도 많고, 웃음 끝에 뭉클한 감동을 주는(혹은 준다고 주장되는) 영화들도 지천에 널렸다.

그것이 ‘비극’이다. 엉뚱 기발 유쾌 감동 같은 단어들이 너무 남루해진 나머지, 정말로 엉뚱하고 기발하며 유쾌하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났을 때, 그 ‘정말로’를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무덥고 지루했던 어느 해 여름, 복잡한 수학공식이 가랑잎만 굴러도 까르르 웃어대는 초특급 명랑 소녀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보충수업을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밴드부의 도시락을 배달하러 간 13인의 낙제 소녀들.

논두렁 밭두렁 걸으며 여름 땡볕에 데워간 ‘센스 빵점’의 도시락으로 밴드부 전원은 ‘설사의 도가니’에 빠지고,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배달의 소녀’들이 밴드부를 대신하게 된다.

재즈를 통한 낙제 여고생들의 성장담을 그린 일본영화 ‘스윙걸즈(Swing Girls)’는 ‘워터보이즈’(2001)를 만든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2004년 작품이다.

주요 설정과 호쾌한 분위기가 전작과 비슷해 종종 ‘워터보이즈’의 여학생 버전으로 일컬어지지만, 이 같은 명명은 이 작품에 대한 일종의 무례다.

남학생들의 수중발레 도전기를 여학생들의 재즈 도전기와 짝짓는 일은 대단히 편리하고 타당한 근거들을 갖추고 있지만, 약동하는 생기와 에너지로 충만한 ‘스윙걸즈’ 고유의 아우라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날숨으로 창문에 붙인 티슈 떨어뜨리지 않기, 입김으로 페트병 찌그러뜨리기…이 같은 차력 쇼 스타일의 특훈을 거쳐 드디어 소녀들의 손끝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 영화는 시종 터져 나오는 폭소와 함께 재즈가 생의 동의어라는 주장을 반박할 수 없게 증명해 보인다.

신호등 벨 소리, 주고받는 탁구공 소리, 버스 안내양의 박수 소리 등 온갖 생활의 소리가 이들의 몸 안에선 재즈의 리듬으로 변환되고, 그 리듬은 생의 맥박과 너무 닮아 있다.

세공하지 않은 밋밋한 화면과 시골마을의 권태를 닮은 다소 촌스러운 영상, 낙제생들이 간난신고 끝에 멋진 재즈밴드로 거듭난다는 새로울 것 없는 드라마투르기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만화적 편집, 포복절도할 연쇄폭소가 이 영화를 유쾌한 성장드라마로 변신시켰다.

특히 슬로모션과 정지화면으로 꾸민 멧돼지 포획 장면은 만화의 컷을 영상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하며 관객의 혈관에 다량의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주입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의 남자친구를 뺏는 얄미운 연적으로 얼굴을 알린 우에노 주리는 생기발랄 그 자체인 둥근 얼굴과 커다란 눈으로 온갖 만화적 표정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영화에 200%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수천명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3명의 소녀들은 4개월간의 훈련을 통해 ‘Sing Sing Sing’ ‘Coming Through the rye’ 등을 실연, 영화 속 자연스러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보여준다.

유머와 재치로만 시종하다 뭉클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 영화는 무릇 코미디 영화의 감동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며 느닷없는 ‘장중 모드’로 유머의 산통을 깨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교본이 될 법하다.

주의사항: 한참을 깔깔대고 웃다가 비관주의자의 신분을 망각한 채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생을 찬미하는 이상증세 보일 수 있음. 16일 개봉. 12세.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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