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전략은 베트남전을 교과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초당파 의회 외교 자문기구인 외교협회(CFR)의 스티븐 비들 안보문제 선임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3ㆍ4월호)에서 “이라크는 베트남과 전혀 다르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베트남 전략을 추구한다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들은 조지 W 부시 정부는 베트남전에서 리처드 닉슨 정부가 진행한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으나 민족해방 전쟁인 베트남전과 달리 이라크전은 전혀 다른 요인들이 지배하는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내전은 휘발성이 강해 저강도 전쟁 상태라 해도 쉽게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남 베트남에서 미국은 경제부흥과 정치개혁을 지원해 북 베트남과 체제경쟁을 유도했다. 1961~68년에만 290억 달러가 지원되고, 65년에는 지상군이 대규모로 파견됐다.
자신감이 붙은 닉슨 정부는 69년 베트남인에게 베트남 문제를 맡기는 ‘베트남화’ 전략을 채택했다. 남베트남 군에게 ‘반군’ 소탕을 맡기고 미군은 철수한다는 것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미군 철수는 남베트남군이 강성해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정부 역시 경제재건과 민주개혁을 통해 새 주권정부를 구성토록 하고, ‘이라크화’를 위해 이라크 자체 군과 경찰을 육성하고 있다.
미군은 이들에게 반군과의 전투를 맡기고 철수할 예정이다. “이라크 군이 조직되면 연합군이 철수할 수 있다”는 부시의 말도 닉슨의 발언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미국 전략은 내전과 해방전쟁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들은 비판했다. 북 베트남은 이념과 민족주의를 앞세웠으며, 외세가 지지하는 정권 전복을 민중의 의지로 포장했다.
그러나 인종과 종파로 갈라진 이라크 반군에게 계급과 민족의식을 통한 유대감은 없다. 이들의 대립은 이념이 아닌 집단의 생존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이라크 반군을 반미 민족주의자로 잘못 분석하지만, 수니파의 반미는 미국이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지원하기 때문이지 이념 문제가 원인은 아니다.
이라크를 베트남화할 경우 문제는 미군의 전쟁 명분이 좁혀지고, 종파ㆍ인종 갈등은 확대된다는 점이다. 급진적 민주화는 오히려 유권자를 앞세운 세력들 간의 갈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
비들은 여기에 이라크 군을 무장시켜 반군과의 전투를 맡기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붙는 격이라고 우려한다. 수니파에게 이라크 군은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군대일 뿐이기 때문에 종파간 긴장은 더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비들은 이라크의 해법을 정치협상에서 찾도록 제시하고, 이라크 군과 경찰의 육성은 정치협상 타결 이후로 늦출 것을 주문했다.
또 미군은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의 3대 세력 간에 군사적 균형을 통한 타협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고려없이 ‘이라크화’ 전략에 따라 미군이 먼저 철수한다면 내전의 파국은 피하기 어렵다고 그는 경고했다.
이태규 기자 tglee@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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