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두 꼴찌다. 감독이나 선수나 똑같다. 스포트라이트는 저기 먼 곳 또는 다른 사람의 얘기일 뿐이다. 한번도 앞줄에 나서지 못한 채 늘 뒷줄에 서 있었다.
한때는 그게 몸에 배 ‘뒷줄 인생’이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지금, 그들은 반란을 꿈꾼다.
삼일절 아침, 경남 진해 공설 야구장. 뛰고, 던지고, 치고, 받는 선수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키 170㎝, 몸무게 70㎏의 자그마한 사내의 고함 소리에 꽃샘 추위가 놀라 달아난다. “야, 공을 끝까지 봐야지. 방망이는 폼으로 들고 있는 거냐. 그리고 너는 공을 채는 맛이 없잖아.”
지난해 12월 창단한 국제디지털대 야구부 감사용(50) 감독.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한 선수’였던 그는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덕에 야구팬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그 이름을 꽤 알렸다.
그러나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에 는 슈퍼스타가 없었고, ‘슈퍼스타 감사용’은 결코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그의 구령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13명의 선수들은 고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들. 이들 또한 감독의 젊은 때와 다르지 않다. 한결같이 ‘대기 인생’이었다.
벤치나 데우면서 주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를 기다려야 했다. 명문대 야구부가 그들을 지명할 턱이 없었다. 그렇지만 감 감독이 그랬듯이 그들도 아직은 글러브를 손에서 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3일 대학 춘계리그가 시작된다. 내로라 하는 30여개 팀이 출전한다. 거기에서 대학 야구 관계자들에게 “우리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감 감독의 목표다.
감 감독은 “한번만 이기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많이 부족하지만 선수들의 넘치는 의욕을 보면 절로 힘이 솟는다. 잘하면 이번 리그의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다”고 은근히 자신감도 내비친다.
팀내 4번 타자이자 주장인 우세윤(21ㆍ내야수) 선수는 “감독님은 1승이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어이없는 플레이만 하지 않고 각자의 기량을 발휘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선수들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유독 눈길이 가는 선수가 있다. 국내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인 충주성심학교를 올 2월 졸업한 장왕근(20ㆍ외야수) 선수다.
인터뷰 질문이 적힌 종이에 또박또박 힘주어 써 내려갔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야구부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훈련비를 내지 못한다. 학교 지원도 그리 넉넉치 않다. 돈 없이는 운동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뛰고 또 뛴다.
적어도 아직은 프로진출의 꿈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중간 휴식 시간. 감 감독의 한 마디에 선수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열악한 여건에서 출발한 거 다들 잘 알지. 그래도 열심히 훈련해서 이번 대회에서 뭔가를 보여주자.
팀을 위해 희생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안 되는 게 없어. 자, 자 파이팅 한번 하자. 파이팅!”
진해=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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