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재공연 무대들이 새 봄을 반긴다. 연극이란, 막 올릴 때마다 새로운 시도로 다시 살아난다는 진실을 상기시켜 주는 무대들이다.
원로 연출가 민동원(54회)에서 막내둥이 배우 이지용(87회)까지, 16명의 출연 배우들 모두가 선후배 동문이다. 중동고 개교 100주년으로 상연될 ‘혈맥’에서 이 학교와 연을 맺지 않은 사람은 성병숙 등 다섯 명의 여배우뿐. 드라마 센터 주최 연극 경연 대회 10년 연속 최우수 단체상 수상 등의 역사를 만든 이일웅(54회ㆍKBS), 이승호(59회ㆍ실험극단), 김재건(60회ㆍ국립극단) 등 고참에서 이영호(72회ㆍ〃) 등 막내까지 모두 동문이다.
이 학교 27회로, 지금은 고인인 된 원작자 김영수씨가 1948년에 발표한 동명의 희곡이 뿌린 씨앗이 예까지 왔다. 이처럼 작가를 비롯해 연출, 배우가 모두 동문으로 이뤄진 무대는 국내 공연 사상 유례 없던 일. 중견 연출가 기국서(65회)씨는 “여타 극단의 경우,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문제까지도 특유의 정으로 눅여 낸다”며 매일 오후 3~8시에 펼쳐지는 연습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원작자의 딸로, 2002년 부친의 전기 ‘작가 김영수’를 쓰기도 했던 김유미씨는 연습 소식을 듣고는 살고 있는 미국에서 연습실까지 찾아와 회식비를 쾌척하는 등 열기를 돋웠다는 것. 3월 10~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화~금 오후 7시 30분, 토ㆍ일 2시 6시. (02)765-5476
‘혈맥’이 대규모 리얼리즘극이라면, 그렇지않아도 정반대 분위기의 2인 부조리극 ‘타이피스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환골탈태할 태세다. 하루 동안의 일상 속에서 시시각각 늙어간다는 설정 아래 하루를 40년으로 간주, 20대 남녀가 60대로 퇴근한다. 삶의 부조리함을 희극적으로 그린 작품인데 이번에는 한국적 변용이 신선하다. 은자와 필구로 바뀐 두 주인공이 화장실과 사장실을 오갈 때마다 성큼 성큼 나이 먹은 모습으로 바뀌어 일상의 덧없음이 즉물적으로 체감된다.
원단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설정으로 자칫 추상적으로 다가오기 십상인 원작과의 거리를 없앴다.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대표 임도완씨가 축적해 온 육체 언어의 진수가 펼쳐진다. 정은영 김재구(3월), 윤진희 이상일(4월) 출연. 3월 3일~4월 30일 인켈아트홀 2관. 화~금 오후 8시, 토 4시 7시, 일 3시. (02)744-0300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날 보러 와요’로 여전히 살아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각색됐던 이 연극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이 ‘다시 보고 싶은 연극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선정해 객석을 사로잡는다.
최용민, 류태호, 권해효, 김뢰하 등 1996년 초연 멤버들이 모처럼 다시 모여 빚어내는 앙상블의 힘을 뉘라서 따를까. 오리지널 작ㆍ연출자 김광림씨까지 참여, 영광을 재현한다. 3월 17일~4월 9일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3시. 1588-7890
리얼리즘의 진수, ‘혈맥’
부조리의 묘미, ‘타이피스트’
진실은 어디에, ‘날 보러 와요’`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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