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지구극연구소의 ‘복어’가 감당하고 있는 영역의 진폭은 매우 크다. 시장 바닥 같은 번다한 활력으로 관객의 정신을 혼란스럽게까지 하더니, 멜로 드라마 같은 애잔함으로 극장 안의 공기를 지긋이 누른다. 지금 이 곳의 역사성을 꿰뚫어 보며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점을 연극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주도해 온 소극장 아리랑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나를 실증하는 자리이기도 한 것은 그래서다.
전반부는 민중 소극(笑劇ㆍfarce)을 연상케 한다. 루이 암스트롱의 걸쭉한 목청으로 한껏 흥을 돋워 막 올린 무대는 복어집 사장(뽁사장), 한 탕 생각에 사로잡힌 조폭 두목, 그의 애인(여왕벌), 챔피언을 꿈꾸는 권투 선수 등으로 이 시대의 욕망들을 모자이크 한다.
얼른 보기에 극도의 혼란상으로 비춰지는 그 소란은 그러나 잘 계산된 전략이다. 잘 짜여진 혼돈에서 객석은 무대로부터 밀려 오는 어떤 압력 또는 실존감 속으로 슬슬 빨려 들어 간다. 건달들이 능글맞게 구사하는 사투리, 어둠의 소굴에서 두목과 그의 애인이 벌이는 정사 장면 등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극중 현실에 관객은 몰입된다.
그러나 따로 놓여 있던 상황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극은 객석의 의식을 흡인한다. 즉 지금껏 나온 인물들은 무산자(無産者)라는 하나의 거대한 틀 속에 융합된다는, 다소는 비극적인 인식이 그것. 착하게만 살던 복어집 사장은 어느날 자신의 복어 요리를 먹은 사람이 식중독으로 죽으면서 급전직하해야 했고, 소굴에 모여 살던 깡패들은 당국의 대대적인 철거 작전에 파리 목숨이다.
깡패들은 뽁사장을 내세워 살 집을 마련해 달라는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 탈진한 뽁사장을 돌보는 것은 두목에 유린당하고 임신까지 해 버림 받은 여왕벌뿐이다. 일견 무관해 보이는 뽁사장과 깡패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줄거리로 엮어지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환이 매끄럽지 못 하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착하게 살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가혹한 운명에 고개를 떨궈야 한다는 현실 논리 앞에 이 시대는 코웃음 칠 수 있을까.
소란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배우들이 이뤄내는 조화가 인상적이다. 깡패들이 무대에서 실제로 라면을 끓여 먹다 씹던 라면 파편을 사방으로 흩튀기는 장면, 영화 ‘슈렉’ 속 골룸의 언동으로 비루한 밑바닥 삶을 구현해 내는 연기 등에서는 무대의 압력이 느껴진다. 6월 11일까지 아리랑소극장. 화~금 오후 8시, 토요일ㆍ공휴일 4시 8시, 일 4시.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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