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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父子환경미화원' 다르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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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父子환경미화원' 다르게 읽기

입력
2006.03.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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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은 기자에게 추억의 ‘신형 엔진’이다.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공격의 시발점이듯 취재수첩은 기자에게 상상력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난 우리 집 컴퓨터 옆 낡은 책꽂이에 취재수첩을 모아둔다. 기자 초년병 때부터 남들은 이해 못할 이 행동을 계속한 덕분에 책꽂이에 책은 별로 없고 수첩만 가득하다. 주5일 근무제 이후 금요일에 쉴 경우가 생겼는데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아무 할 일이 없어 취재수첩을 꺼내 읽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2주 전에도 마침 금요일이 휴일이어서 이 ‘편집증적인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 표지에 ‘1992년 봄’이라고 쓰여진 취재수첩을 뒤적이다 수첩 한가운데쯤에서 ‘환경미화원 ○○○’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취재내용을 발견했다. 서울의 한 구청이 주는 모범환경미화원 표창을 받고 얼굴에 온통 주름을 지어가며 웃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50대초였던 그는 25년을 환경미화원으로 살았다. 이 숫자들만으로도 팍팍했던 그의 삶이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그의 별명은 다른 환경미화원들 사이에서는 ‘황소’, 집에서는 ‘구두쇠’였다. 앞의 별명은 새벽 1~2시부터 한낮까지 잠깐도 쉬지 않고 거리를 쓸어 길이 언제나 반짝반짝 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다른 별명은 세금 떼면 7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2남1녀를 공부시키느라 툭하면 끼니를 거르고, 버스비가 아까워 왕복 10㎞가 넘는 집에서 구청까지 걸어서 출ㆍ퇴근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희생을 알았는지 자녀들은 모두 말썽 한번 안 부리고 잘 커줬다. 과외는커녕 참고서도 제대로 못 사줬는데 두 아들은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 ‘잘 나가는 사원’이 됐다.

이 환경미화원 기사가 실린 지 14년 만인 2006년 2월9일 다른 환경미화원 기사가 신문에 났다.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서울의 모 구청에 아들도 같은 직종으로 들어가 ‘부자(父子)환경미화원’이 탄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아버지를 만났는데 청소복 입은 모습이 부끄러워 줄달음쳤다”며 “그러나 철이 들면서 새벽같이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를 배웅할 때는 항상 자랑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해 면접관들을 울렸다고 한다.

14년 전 대기업 사원이 된 환경미화원 아들과 달리 아버지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대를 이은 2006년 환경미화원 아들의 모습은 무척 당당해 보여 반갑다. 하지만 이토록 감동적인 스토리에 마냥 감동만 할 수 없는 것은 왜 일까.

요즘 환경미화원 채용 경쟁률이 수십대 1에 달한다. 과거보다 고용조건이 많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환경미화원에 이렇게 많이 지원하는 것은 전반적인 고용사정이 어려워진 점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취업이 잘 안되니 여기라도 지원한다. 대학원 대학 나온 사람들도 몰려든다고 하는데 과연 이들이 다른 취직자리가 있었다면 환경미화원이 되려 했겠는가.

역동적이던 우리사회가 ‘신분고정 사회’가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벌 총수 아들이 재벌 총수가 되고 환경미화원 아들이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을 보면서 관리의 아들이 관리가, 농민의 아들이 농민이 됐던 조선시대가 연상됐다.

이은호 사회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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