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을 위해 질주하는 유럽연합(EU) 호가 경제 국수주의 벽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거대 회사들이 국경을 뛰어 넘어 다른 나라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을 적극 시도하고 나서자 각국 정부들이 자국의 알짜 기업을 내줄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경제 통합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 국수주의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프랑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25일 국영에너지 기업 프랑스가스(GDF)와 민간업체 수에즈사의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넬이 수에즈의 벨기에 자회사 엘렉트라벨을 인수 하겠다는 뜻을 밝힌 직후 나온 것이다.
사실 프랑스 정부가 이 합병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부터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7일“그 동안 합병에 적극적이지 않던 드 빌팽 총리가 합병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마음을 바꿨다”며 “에너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마당에 이탈리아 기업 에넬에게 수에즈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클라디오 스카졸라 이탈리아 산업장관은 일간 라 스탐파 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EU가 만든 규칙을 수없이 위반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권리와 기업 발전 가능성까지 막을 것”이라며 “우리는 보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앞서 스페인 정부도 독일 E.ON이 스페인 에너지 기업 엔더사에 291억 유로(약 34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막고 나섰다.
스페인 정부는 엔더사를 향해“돈에 눈이 어두워 독일에 팔려가려 한다. 애국심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다”고 비난한데 이어 스페인 주식시장 감시시구에 엔더사와 E.ON의 인수 협상 과정에 문제는 없는 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페인은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거부권 행사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유럽위원회는 스페인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규정 위반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영국 BBC 방송은 “스페인 정부는 내심 국내 에너지 기업 ‘가스 내추럴’과 엔더사가 합병해 거대 에너지 기업으로 탄생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가스 내추럴은 지난해 9월 엔더사에 224억 유로를 주고 인수할 뜻을 밝힌 상태다.
폴란드 정부도 최근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가 자국내 2,3위 은행인 페카오와 BPH에 대한 인수 시도를 막기 위해 국영은행 PKO BP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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