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가 싸게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원전 덕분 아닙니까.”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원전 정책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에둘러 말한 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안 없는 시대에 그나마 대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사실 국내 전력생산의 40%를 담당하는 원전를 모두 중유로 대체할 경우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최소 33% 이상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비용도 7조1,700억원(중유기준 2억1,6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한국수력원자력㈜측은 예상한다. 1983년 이후 국내소비자 물가가 156%나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3%인상에 그친 것도 원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2011년까지 무려 9조원을 투입해 풍력 태양광 발전 등을 확대하더라도 국내 대체에너지의 비중은 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10년에 이를 10%대로 끌어 올리더라도 나머지 90%의 에너지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원전을 적극 활용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원전이 꼭 필요하고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해도 안전성에 대한 확실한 담보 없이는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낮추기는 쉽지 않다.
특히 올해는 유럽에서 대대적인 반핵운동을 촉발시켰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20년 주년이 되는 해이다. “고유가와 온실가스 규제로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체르노빌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전 전문가들은 지난 20년간 기술개발을 지속한 결과, “원전은 관리만 제대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매우 안전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기존 원전(제2세대ㆍ1970년대 이후 등장한 원전)보다 성능이 대폭 향상된 신형 원전(제3세대ㆍ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원전)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신형 원전들은 주로 발전용량의 대형화와 함께 건설 공기단축, 설계수명 연장 등을 통해 경제성을 크게 늘리는 동시에 만일에 있을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해 원자로 둘레에 다중 보호벽을 설치, 안전성을 크게 개선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체르노빌은 원전자체의 사고라기 보다는 옛 소련 공산정권이 원전을 다른 실험 목적으로 이용하다가 발생한 것”이라며 “원자로만 놓고 봐도 당시의 원자로는 현재 도입되고 있거나 새로 건설을 계획중인 원자로와는 안전성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원자로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핵분열 과정이 저절로 중단되고, 방사능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방호설비를 갖춰 체르노빌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의 원전기술은 해외에서도 인정 받고 있다. 현재 20개의 원전을 가동, 세계 6위의 원전 대국으로 올라선 한국은 지난 20여년간 원전 운전 경험과 기술축적으로 안전성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고 있어 해외수출까지 추진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는 한국 표준형 원전 ‘OPR1000’(제3세대)을 토대로 92년부터 10년간 2,300억원을 들여 최근 신형 경수로 ‘APR1400’(제3세대+ㆍ2010년 상용화하는 원자로)를 독자 개발했다. 현재 이 제품을 앞세워 한국전력기술㈜, 미국 WEC, 캐나다 AECL 등 국내외 전기ㆍ원전 기술 업체들과 손잡고 중국ㆍ 루마니아 등으로 시장을 넓히려 하고 있다.
한국은 꿈의 원자로로 불리는 차세대 원전(4세대)연구에도 2002년부터 미국 등 10개국과 함께 기술개발 포럼에 가입,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직 연구 단계이고 2030년께나 상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세대 원자로는 사용연료를 다시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우라늄 사용 효율을 현재보다 60배 정도 높여 방사성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안전성을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은 이제 단순한 찬반 논란차원을 넘어 미래를 움직이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미국이 2001년부터 차세대 원자력 개발에 1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과학기술원 장순흥 부총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우리처럼 자원이 업는 나라에게 가장 현실적인 답은 두뇌로서 에너지안보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과감한 원전 최우선 정책을 실시, 후손들에게 에너지 부국을 물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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