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공단의 A전자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난해 회사는 1,770억원의 매출에 22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1억불 수출탑까지 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다 빛 좋은 개살구”라며 쓴웃음 짓는다.
그는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10원이 많은 64만1,850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다. 회사는 휴대폰 메시지 하나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다. 김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동물과 같다”고 말한다.
27일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김씨 같이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억울한 차별에 시달려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국회 계류 15개월 만에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 때 본회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채용과 계약 해지가 쉽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확대하면서 2001년 360만명에서 지난해 549만명(노동부 추산)으로 급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의 양극화는 노사 뿐만 아니라 노노 갈등으로까지 번지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월 평균 임금(116만원)이 정규직의 60% 정도이고, 국민연금과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비율은 각각 29.7%과 43.1%에 머무르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이 같은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동일 사업장 내에서 합리적 사유 없이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차별금지’ 원칙을 새로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실제로 적용될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최소한 정규직의 80% 수준까지는 오르고, 산재 등 각종 보험도 적용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어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또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2년 동안은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2년을 초과하면 무기(無期)계약으로 간주, 사실상 정규직화(고용의제)하도록 했다.
현재는 근로계약 기간이 최장 1년으로 제한돼 있다. 그 동안 사업주가 근로 계약을 반복해 갱신하면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실상 무기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2년을 초과하거나 불법 파견이 적발될 때에는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고용의무)을 만들었다. 당초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사용 기간을 3년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2년으로 규정했다.
다만 그 동안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했던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 제한에는 기존 관행을 따라 제한을 두지 않았다. 사측의 요구를 감안한 것이다. 어느 직종에서든 기업이 필요에 따라 제한 없이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노사정위원회의 이호근 비정규직 전문위원은 “그 동안 사용 기간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이 남발돼 왔다”며 “이 법을 통해 사업주가 합리적인 틀 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계약을 연장하거나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해 준다면 노동시장 양극화를 바로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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