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11월11일로 시계를 돌려봅니다. 한달 동안 무력으로 조선의 강화도를 점거했던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저항에 밀려 퇴각하게 됩니다. 당시 강화읍성에는 외규장각이라는, 일종의 왕립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 등을 보관했던 곳인데, 퇴각하던 프랑스군은 이곳에서 도서를 탈취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외규장각이 1,042종, 6,130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프랑스군은 그야말로 한국 역사의 일정 부분을 말살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프랑스군의 약탈로 그나마 화를 면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문화와 역사의 도시라고 자랑하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습니다.
지난 주, 파리에서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한국과 프랑스 정부의 협상이 있었습니다. 1992년 7월 한국 정부의 공식 반환 요청 이후 진전이 없던 협상이 재개된 겁니다. 양국은 외규장각 도서의 디지털 자료화에 합의했지만, ‘반환 절대 불가’라는 프랑스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때 양국 민간 대표단이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 받는 대신 다른 문서를 내주는 맞교환 방식에 잠정 합의한 적이 있습니다만, 물건 주인이 도둑한테 그 물건을 빌리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물건을 내준다니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연히 백지화했지요. 여러분들도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에게 무수히 많은 예술품을 빼앗긴 경험이 있으니 한국민의 공분(公憤)에 충분히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최근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와 관련해 의미있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2,500년 전 제작된 항아리를 이탈리아에 반환키로 한 겁니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정부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손을 거쳐 소장하게 된 미술품들을 작가의 후손들에게 돌려준답니다. 전에도 있던 일이지만,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이 있다 보니 더욱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른 나라 예를 들 것 없이 프랑스의 경우를 말해보죠. 프랑스 정부도 20년 간 요구한 끝에 1994년 독일 정부로부터 나치가 약탈한 모네, 고갱, 세잔느, 르느와르의 그림 등 미술품을 돌려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환이 아니라 순수한 선물”이라구요. 약탈 문화재는 교환이 아니라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프랑스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부정적입니다.
왜일까요. 아마 외규장각 도서의 가치에 천착한다기 보다는 정부 차원의 반환이 초래할 파장이 두렵기 때문일 겁니다. 이집트 등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로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려 보십시오. 한국에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면 이집트 등 다른 나라들이 가만 있겠습니까. 그런 사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겁니다.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지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를 기념해 170여건에 이르는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양국에서 열릴 예정이라지만 솔직히 씁쓸합니다.
여러분의 정부는 140년 전의 약탈 행위에 대해 사과하기는 커녕 여전히 오만합니다. 빼앗긴 예술품을 돌려받는 데는 열심이면서 정작 빼앗은 문화재를 돌려주는 데는 인색한 프랑스가 이성과 합리, 문화와 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제라도 프랑스 사회와 정부를 향해 “돌려받았으니 이젠 돌려주자”고 외치십시오. 그것만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는 길일 겁니다.
황상진 문화스포츠부 부장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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