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가 일어나기 6개월 전인 2001년 3월 27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예일대 국제학부 루스관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다각적 고찰’이라는 토론회에서 한국계 고홍주 법대 교수(현 예일대 법대 학장)와 ‘떠돌이(roving) 외교관’이라는 직함을 가진 아프간 정부 측 인사가 치열한 논리 공방을 벌였다.
20대 초반의 아프간 외교관 사예드 라마툴라 하셰미는 탈레반에 대한 고 교수의 차가운 공박에 “당신에게 탈레반 얘기를 들었다면 누구라도 우리를 증오하겠군요”라고 일갈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지난해 7월 탈레반의 이 젊은 외교관은 다시 예일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2005학번 신입생 자격으로.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26일 탈레반 출신으로 예일대 새내기가 된 올해 27세 라마툴라의 짧지만 긴 인정역정을 집중 조명했다. 구 소련이 아프간을 점령하고 있던 1978년 태어나 파키스탄 난민 캠프와 탈레반 전사를 거쳐 아이비리그 학생이 되기까지 그가 밟아온 삶의 궤적은 화약 냄새 속에서도 평화를 갈망하는 아프간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했다.
4세 때 파키스탄 난민 캠프로 넘어가 국제 구호단체로부터 영어를 배운 라마툴라는 16세 때 나이를 18세로 속이고 탈레반에 가입했다. 영어 실력 덕분에 2000년 ‘떠돌이 외교관’에 임명됐으나 얼마 안돼 인생을 180도 바꿔놓은 9ㆍ11 테러를 목격했다. ‘떠돌이 외교관’은 아무도 탈레반과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외교관이 상대 국가를 찾아 나서게 됐다는 데서 유래했다.
미국의 공습으로 파키스탄 퀘타에서 다시 난민 신세가 된 라마툴라는 탈레반 시절 친분을 쌓아온 다큐멘터리 작가의 제안으로 예일대에 지원했다. 검정고시로 따낸 고교 졸업 자격이 전부였지만 대학은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라며 지난해 1월 입학을 허가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절대 넘길 수 없다”던 이 맹렬 탈레반 전사는 지금 휴대폰을 들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대학생으로 변신했다. 터번을 벗어 던지고 길게 길렀던 수염과 머리도 짧게 다듬었다. 메카의 방향을 찾아 하루 5번 기도하고 ‘슬리프카’라는 유대인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난해 여름 친구들과 함께 하버드_예일 대항 조정경기에서 난생 처음 소리를 질러대며 신나는 시간을 가졌다. 크리켓을 즐기는 라마툴라는 요즘 헬스장을 찾아 몸만들기에 열심이다. 지난해 11월 생일에는 친구들이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누군가에게서 생일 축하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의 시간표는 영어, 정치학 입문, 국제도시 관리 같은 교양 수업으로 채워져 있다. 1월 받아본 첫 학점은 3.33(B+ 수준). 나쁘지 않은 점수다. 다만 전략과목으로 택한 ‘테러의 과거 현재 미래’ 성적이 가장 나쁜 것이 실망스럽다.
라마툴라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을 뻔했던 내가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건 기적”이라면서 “다만 파키스탄에 두고 온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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