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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강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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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서강학파

입력
2006.02.2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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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0월20일, 라디오를 듣던 재무부 관리들은 깜짝 놀랐다. 모피아(mofiaㆍ재무부마피아)로 불리며 최고 실세부서를 자임하던 곳의 수장에 남덕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임명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까닭이다. 이른바 ‘서강학파’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백면서생이 관료조직에 들어와,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뜨악한 분위기 속에 취임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74년 9월까지 최장수 재무장관의 기록을 세운 뒤 경제부총리로 영전해 78년 12월까지 재임했다. 5공 군사정권 초엔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니 관운(官運)이나 한국경제를 말할 때 그를 빼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서강대 경제학과에 재직하던 이승윤 교수와 김만제 교수는 71년 금융통화운영위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초대 원장으로 각각 발탁돼 관변학자의 길을 걸으며 개발시대 우리 경제의 성장모델을 설계한‘서강학파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불균형 근대화 모델을 토대로 대기업 및 중화학공업 중심의 성장우선주의와 수출지상주의를 밀어붙인 그들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두 사람이 80년대와 90년대 초에 걸쳐 앞을 다투며 재무장관과 경제부총리를 모두 역임한 것은 그 모델의 후광 덕이다.

▦서강학파의 압축성장 신화는 97년 겨울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정경유착 차입경영 관치금융 분배왜곡 노동억압 등 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제반 모순들이 일거에 표출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같은 해 1월 금융시장의 이상조짐을 눈치 챈 정부가 급히 발족시킨 금융개혁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고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과 김병주 서강대 교수가 이 학파의 맏형과 막내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시대의 처음과 끝을 극적으로 장식한 서강학파이지만 이후 세월에 영욕과 공과를 모두 흘려보내 이젠 교훈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청와대가 양극화 기획물에서 돌연 서강학파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나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양극화 해법을 계층갈등 조장에서 찾는 듯한 수상쩍은 몸짓을 보이더니 돌연 압축성장과 양극화를 ‘불균형 성장의 이란성 쌍둥이’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대학생 수준의 (유치한) 글”을 쓴 이 정권은 한국사회의 분배구조 추이를 연구한 논문 한 편만 읽어봐도 쥐구멍을 찾게 될 것이다. 문제는 ‘개발시대 양극화’가 아니라 ‘참여정부 양극화’다. 의도만 좋으면 책임에선 자유롭다는 그들만의 오만이 무섭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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