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제도가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인수ㆍ합병(M&A) 사냥꾼들에게 알토란 같은 기업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제도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재계의 요구가 상법상 1주 1의결권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작은 지분으로 전 계열사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나라 재벌 오너들의 그룹 지배권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재계는 소버린의 SK㈜에 대한 M&A 시도에 이어 칼 아이칸이 KT&G를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공세가 본격화했다며 경영권 방어제도를 강화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10년전 14.6%에서 최근 40% 수준까지 상승, 적대적 M&A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외국인 1인이 5%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상장사도 2002년 199개에서 최근 450개로 늘어, 적대적 M&A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는 나아가 이러한 적대적 M&A가 단순히 기업의 주인이 바뀌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해당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국민경제의 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상의 관계자는 “투기적 성격의 해외자본들은 국내 기업들이 여유 재원을 생산적 투자에 활용하기 보다 배당을 통해 외국 자본의 높은 투자 수익을 보장해주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기 마련”이라며 “이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 국내에 진출한 해외 자본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되는 해외투기 자본의 시세 차익이 최소 6조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주장했다.
한국 재벌들이 기업의 이익 극대화보다 총수의 개인 이익을 늘려주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업은 경영권 경쟁을 통해서 발전하는 법”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대적 M&A 방어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재벌 오너들의 경영권을 과도하게 보호해 주는 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권 방어장치를 요구하기 전에 재계가 스스로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게 된 이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편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제도 등 재계가 주장하고 있는 일부 경영권 방어제도는 경제기본법 성격인 상법과 배치돼 실제 도입되려면 많은 논란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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