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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엔 우산이 없다/ 문학 저작권 보호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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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엔 우산이 없다/ 문학 저작권 보호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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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7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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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공공의 공짜 콘텐츠' 인식부터 바뀌어야

#1. 지난 해 말, 국내의 한 대기업이 30대 젊은 시인에게 머리를 조아린 일이 있다. 에어컨 광고 문구로 시인의 시를 무단 사용한 것이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광고업계가 문학의 구절에서 이미지를 차용(?)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처럼 시구를 그대로 갖다 쓰는 예는 흔치 않다. 기업과 시인, 출판사가 보상에 합의해 문제는 비교적 조용히 해결됐다. 하지만 산업재산권 귀한 줄은 알면서 문학 저작권은 가볍게 여기는 기업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 사례였다.

#2.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기형도'를 치면 수십 개의 카페와 블로그가 뜬다. 저작권이 멀쩡히 살아있는 이 요절 시인의 시 전부를 담은 사이트도 줄잡아 수십 개다. 요령에 밝은 네티즌이라면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국내 유명 시인, 소설가의 어지간한 작품은 인터넷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각급 학교 홈페이지 '문학 자료실'에도 교사나 학생들이 올린 문학 작품들이 부지기수다. 모두 불법 콘텐트다.

#3. 한국예술종합학교 윤영선 교수가 자신의 희곡 '키스'의 일부 대사를 영화 '왕의 남자'가 도용한 데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자 희곡ㆍ연극계는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그간 알면서도 참고, 몰라서 당하며 쌓인 연극, 희곡계의 감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대학의 다른 교수는 "문학 저작권을 우습게 아는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음악 영상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문화의 기초 장르인 시와 소설 등 문학 저작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문예지에 발표된 신작 시(詩)가 한 달도 안돼 인터넷에 뜨고, 비교적 알려진 시인의 시는 찾아 읽지 못할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 박완서 신경숙 등 유명 작가의 소설 텍스트 파일도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작가나 출판업계가 문학 작품을 전재하거나 부분 게재한 학습지, 참고서에 대해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터넷 교육업체의 위법 행위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도 채 1년이 안된다. 노래나 영화 파일처럼 시 한 편, 소설 한 편도 저작권자인 작가와 출판사의 재산이다. 지난 해 4월 발족한 문화부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 해 온라인 출판 단속반(2명)을 동원해 적발한 출판물 저작권 침해사례는 무려 677건, 85만5,000점에 달했다.

저작권 보호에 문학이 유독 취약한 것은, 장르 특성상 복사ㆍ전송 등 유통이 쉽기 때문이다. 영화나 가요업계가 기획사, 에이전시, 매니저 등을 통해 지식재산권 보호 및 관리에 철저한 반면, 문학은 그런 시스템이 취약하거나 아예 없다. 저작권자(작가와 출판사)의 인식과 의지 역시 흐릿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관광부 저작권과 신은향 사무관은 "문학 저작권 침해 사례를 적발해 출판사나 작가에게 통보해도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결과를 통보해도 소송으로 이어진 예는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범죄가 친고죄이다 보니 인터넷으로 시를 퍼 나르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아는 네티즌은 거의 없다. 문인들조차 개인 홈페이지에 수 천 편의 시를 옮겨놓고, 풍성한 콘텐트를 자랑스러워 하는 예도 있다.

문학 저작권 보호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출판사, 정부기관, 출판협회 등이 함께 본격적인 감시,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출판사 관계자) "문학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단속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40대 시인)….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문학의 유통과 향유라는 문화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시집 소설책 안 사는 게 인터넷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30대 소설가) "영리 목적의 저작권 침해는 근절하되 독자들이 시 몇 편 퍼가는 것까지 막는 것은 무리다."(30대 시인) 이들은, 연전 공중파 방송이 시를 낭송하는 경우 저작권료를 물리자 그나마 시를 소개하는 경우가 급격히 줄어든 일을 예로 들었다.

단속에 앞서, 문학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불감증 특히 '문학은 공공의 공짜 콘텐트'라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학 작품의 유통면에서 보면 온, 오프라인 상의 문학 저작권 침해가 긍정적 기여를 하는 바도 없지 않다. 또 그것을 홍보 측면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저작권자들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 같은 인식은 치명적이다. 문학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40대 평론가)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 문학평론가 정과리씨/ "詩를 국가 상징자산으로 등록…정부가 저작권료 지급을"

문학평론가 정과리(사진) 연세대 교수는 “산업사회의 문학 장르인 소설과 달리 시는 상업적 경쟁력을 이미 상실했거나 상실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온라인상의 시의 저작권 문제와 관련, “시를 국가의 상징자산으로 등록하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내놨다.

“언어예술로서의 문학, 특히 시는 국가 사회 전체의 문화적 표현과 수사(修辭)의 바탕입니다. 시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오늘의 광고문화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른 문화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는 보이게 안 보이게 국민의 문화생활 전반에 개입하는 무형의 국가 자산입니다.” 즉, 저작권자 개인 혹은 저작권을 위임 받은 출판사 만의 사적 자산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비상업적 용도라면 네티즌들이 시를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게 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저작권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인식을 정부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를 국가의 상징재산으로 등록하는 겁니다. 그래서 네티즌들이 시를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게 하고, 저작권 사용료를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겁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좀 더 고민해야겠지만 말이죠.”

그는 프랑스 정부가 매년 시 문학 창작과 국민적 시 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벌이는 ‘시의 주간’(3월말~4월초) 행사 등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제안이 시의 창작과 유통을 활성화하고 저작권 문제도 ‘문화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문학 출판 저작권, 위탁관리가 현실적 대안

해외 유명작가들의 저작권 관리는 출판사나 개인 에이전시들이 대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문학 출판의 경우 한 작가가 한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는 것이 아니고, 개인 에이전시를 둘 만큼 경제력을 갖춘 작가도 극소수에 그친다. 예외적인 경우로 소설가 이문열 황석영 김영하 씨가 해외출판에 한해 개인 에이전시를 두고 있는 정도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저작권 침해에 대처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저작권 신탁 관리’가 거론된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위탁 받아, 침해사례를 조사하고 법률구조 업무를 대행하는 서비스다. 저작권보호센터 단속팀의 조일출 팀장은 “위법사례 단속도 어렵지만, 권리 처리 관계가 복잡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저작권이 분산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작권 신탁관리 업체로는 사단법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있다. 협회는 1984년 고(故) 김증한 서울대 법대 교수 등 학자와 문인 65명이 논문과 문학 작품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한국저작인협회’를 만들면서 출범했다. 저작권 위탁관리 업무는 89년부터 시작했다. 현 회원 1,789명 중 문학계 회원은 약 800명. 대체로 작고 문인의 저작권 상속자나 원로 중진급 문인들이 주류다.

본격적인 문학 저작권 보호 활동은 2002년부터 이뤄졌다. 학습지, 참고서 등 오프라인 출판물이 시나 소설 등을 무단 게재하는 사례를 중점 조사, 지금까지 73개 업체를 적발해 저작권 사용료 지급 등에 합의했고, 14건의 형사고소와 6건의 분쟁조정 신청을 냈다.

온라인 업체에 대한 조사는 지난 해부터 시작해 두 업체를 형사고소한 상태. 협회는 영리 목적의 저작권 침해행위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원은 연 2만원의 회비와 법적 구제절차를 통해 생기는 저작권 사용료의 15%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이 밖에 저작물의 온라인 전송과 오프라인 복사를 통한 저작권 신탁업체로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 등이 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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