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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의 끈으로서의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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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통합의 끈으로서의 스포츠

입력
2006.02.27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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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동계올림픽으로 지구촌이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우리 선수들도 사상 최다 메달 획득이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선물했다. 그것은 아마 하나됨의 기쁨일 텐데, 양극화와 이념적 갈등으로 이리저리 골이 패인 작금의 나라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값진 선물이라 하겠다.

스포츠 결속력은 종교를 능가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피아 제전이 열릴 때는 모든 전쟁이 중단되었다. 대회 참가자의 편의를 위해 적대 지역의 여행도 보장되었다. 하계 올림픽은 1896년 부활되었고 동계 올림픽은 1924년 시작되었지만, 부디 이런 성스러운 휴전의 전통도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 마호메트 풍자 만평으로 첨예한 문명 갈등이 재연되고 있는 위기의 국면이 이번 스포츠 제전을 거치면서 가실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630년 메카 무혈입성을 기점으로 사막에 흩어져 살던 부족들을 알라의 이름 아래 단일한 아랍민족으로 통합했다. 이것은 유대교의 출발점에 있는 모세가 유일신 야훼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파를 하나의 유대민족으로 묶었던 것과 같다. 모세와 마호메트는 모두 종교의 창시자이자 민족의 창조자였다. 평지가 적고 산지가 많아 골짜기마다 생긴 200여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 살았던 그리스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것도 올림포스의 신들이었다. 그리스 민족은 ‘헬레네스’라 불리었는데, 이 말은 제우스의 아내 헬라의 자식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경우들을 볼 때 민족의 기원에는 어떤 종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민족적 단위의 정신적 통일성이나 문화적 결속력을 가져다 준 것이 종교였던 것이다.

기원전 776년부터 천년이 훨씬 넘도록 지속된 고대 올림피아 경기는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이었지만 순수한 종교의식을 능가하는 결속의 끈을 빚어내었다. 종교적 차이와 이념적 갈등을 뛰어넘는 대통합의 능력을 과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종교는 문화적 배타주의의 배후가 되고 있는 반면, 스포츠는 다양한 문화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스포츠가 종교보다 광범위한 통합의 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장외(場外) 효과일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국가나 민족 간의 사투가 벌어져도 실제로 죽는 사람도, 망하는 국가도 없다. 다음의 경기,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면서 아쉬움을 접으면 그만인 명예전쟁인 것이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고 자동차에 깔려도 다시 살아나서 계속 이야기를 펼쳐가는 만화 주인공 톰과 제리의 세계처럼, 스포츠의 세계는 현실적 삶의 바깥에 놓여있는 일종의 연극무대이자 가상의 공간이다.

무게를 덜 잡을수록 보편성 얻어

이슬람 성경 ‘코란’은 ‘읽어야 한다’는 뜻의 아랍어이다. 하지만 오늘날 종교는 ‘잃어야 한다’는 조건에서만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보다 큰 보편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를 장식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생각해보라. 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트리를 꾸미는가. 그 나무가 사랑과 소망의 상징으로 세계 도처에서 반짝일 수 있는 것은 종교적 심각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종교뿐이랴. 보편성을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은 무엇인가를, 때로는 핵심을 잃어야 한다. 실체까지 훼손되는 존재론적 경량화를 겪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김치가 한국인만 즐길 수 있는 토속적인 강도의 맛을 잃지 않고서도 세계인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심각하게 무게를 잡을수록 촌스러워지고 오히려 가상화될 만큼 가벼워져야 보편성을 얻는다는 이런 스포츠의 역설적 메시지가 종교적 갈등에 휩싸인 유럽과 이슬람권만이 아니라 이념적 갈등으로 파행을 초래한 한국의 정치적 담론의 주체들에까지 들렸으면 한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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