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토머스 제퍼슨까지 가는 데는 반드시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거쳐야 한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의 책으로 잘 알려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한 칼럼을 통해 중동 독재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단계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가 아랍 이슬람 세계에 추동한 민주주의 물결이 강경 이슬람 근본주의의 집권이나 득세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기도 하다.
▦ ‘역사의 종언’이란 책으로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무력수단을 통한 중동민주화가 이슬람 성전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내달 발간될 새 저서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roads)에서다. 프리드먼과 비슷한 시각이다. 그는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네오콘(신보주의자)들의 과도한 군사력 의존을 비판하면서 미국은 선의의 헤게모니 환상을 버리고 무슬림의 마음을 움직일 방안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네오콘에게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 중 한 명인 그가 “네오컨서버티즘은 더 이상 내가 지지할 수 없는 무엇으로 변했다”고 토로했다니 역설적이다.
▦ 부시 집권 2기 들어서 일방주의와 군사력 사용을 주도했던 네오콘들이 줄줄이 밀려나고 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세계은행 총재로,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은 유엔대사로 각각 옮겨갔고 국방부 내 대표적 네오콘이었던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도 물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 대외정책의 주도권이 네오콘에서 국제협력을 중시하는 네오리얼리스트(신현실주의자)들에게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네오리얼리스트의 정점인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요즘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니컬러스 번스 정무차관 등과 함께 네오콘들이 벌여 놓은 사태 수습에 골몰하고 있다.
▦ 그러나 감당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중동을 방문 중인 라이스 장관은 이슬람 강경단체인 하마스 주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을 앞두고 우방인 사우디와 이집트에 팔레스타인 원조 철회 등의 압박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터키는 하마스 망명 지도자의 앙카라 방문을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미국이 부추긴 민주화 바람을 타고 중동지역의 반미 민심은 더욱 거세졌고 친미성향의 독재정권들도 이런 민심을 거스르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역설적 상황이다. 말 그대로 기로에 서 있는 미국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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