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여러 갈래 길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낸 책이 공무원의 길에 들어선 후배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1995년 초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부터 내리 3선을 하며 서울 서초구를 지켜온 조남호(68) 구청장이 퇴임을 4개월 남짓 앞두고 45년간의 행정 노하우를 담은 책 ‘당신이 있어 세상은 더 아름답습니다’(영진미디어 발행)를 냈다. 바쁜 공직생활 도중 짬짬이 해두었던 메모들을 모은 일종의 에세이집이다.
‘CEO형 행정가’ ‘지방행정의 프로페셔널’로 이름높은 조 구청장은 이 책에서 공직자의 제1 덕목으로 ‘역지사지(易之思之)’를 꼽았다. 주민들의 어려움을 공무원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가 서초구에 도입한 ‘보건소 야간진료’ 제도는 바쁜 자녀들 대신 돌봐주던 손자가 아파 밤에 병원 야간응급실을 찾았다가 느낀 답답함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였다.
강남성모병원과 고속버스터미널 사이의 8차선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다 느낀 두려움은 ‘센트럴 포인트 브릿지’라는 멋들어진 육교로 태어났다. 이밖에도 언덕의 옆면을 파서 만든 ‘방음형 언덕 주차장’이나 범죄 예방을 위해 가로등의 조도를 2배로 높인 것도 모두 그가 생활에서 힌트를 얻어 정책화한 것들이다.
조 구청장은 특히 후배들에게 ‘청교도적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그는 “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울시 보건사회국장을 맡고 보니, 음식점의 위생과 안전을 점검하고 단속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업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더라”며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은 점심값이 5,000원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만대사관으로부터 화교 탄압이 아니냐는 항의까지 받으면서도 중국음식점 주방의 개방을 밀어부친 것도 그의 자신감에서 가능했다. 각종 회의나 약속이 있을 때도 관용차보다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는 “함께 다니는 부하 직원들도 좁은 차 안에서 불편하게 내 얼굴 쳐다보는 것보다 지하철 안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가는 것이 편할 것”이라며 웃었다.
퇴임 이후 계획에 대해 그는 “남은 4개월도 짧지 않은 시간인데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대신 그간 나의 경험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나 후배들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방송사 PD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62년 서울시에서 공직에 입문, 대변인 보건사회국장 환경녹지국장 등을 거쳐 관선 마포ㆍ동작ㆍ성동ㆍ서초구청장을 지냈다. 프랑스마을로 불리는 반포 서래마을을 조성하는 등 한ㆍ불 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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