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온이 적조보다 무섭습니다.”
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앞바다. 바둑판처럼 늘어선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동사(凍死)한 돔을 건져 올리던 유성윤(36)씨는 기가 막힌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지난해 여름 입식한 돔은 감성돔과 참돔 등 모두 17만마리. 그러나 바닷물 저수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자식 같은 물고기 대부분을 잃었다. 이미 가두리 25칸 중 10여칸이 텅 비어버렸다.
“가두리 밑 그물에는 얼어 죽은 물고기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요. 올해 물고기 농사는 완전히 망쳤습니다.” 그가 직접 눈으로 보라며 그물을 들어 올리자 살이 녹아 내려 뼈가 앙상히 드러난 물고기 시체들이 떼로 떠올랐다.
남해안 일대 가두리 양식장이 얼어 죽은 물고기들로 넘쳐 나고 있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ㆍ19일)가 지나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강풍 한파 폭설로 해수온도가 매우 낮아 물고기들이 얼어 죽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어류 동사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여수시 돌산읍과 남면, 화정면 일대 가두리 양식장. 지난달 중순부터 10여마리씩 죽어 떠오르더니 이 달 들어서는 무더기로 폐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수시와 수산 당국이 합동 피해조사에 나섰다.
여수시가 어민들의 피해신고를 잠정집계한 결과, 폐사량은 무려 560여만마리에 달한다. 지난해 여름 53일간 계속된 적조로 인해 발생한 전남지역 어류 폐사량이 169만 마리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경남 통영시와 거제시에서도 양식어류 58만8,000여마리가 폐사했다.
피해가 큰 어종은 주로 돔이었다. 돔은 대표적인 온수성 어종이어서 저수온에 약하다. 돔은 수온이 8도 이하로 떨어지면 활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5~6도 밑으로 내려가면 폐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해수온도가 그 아래까지 떨어졌으니 피해가 큰 것은 당연하다. 돌산읍 송도어촌계장 강형두(48)씨는 “주로 양식장이 연안쪽에 있어 육지 날씨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서 “자체 수온 측정 결과, 심한 때는 수온이 4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고 말했다.
더구나 어민들은 2004, 2005년 저수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월동어종인 우럭이 과잉생산되면서 가격이 폭락하자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돔 입식량을 늘렸는데 이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
문제는 저수온을 피할 뚜렷한 대책이 없는 데다 살아 남은 물고기들도 대부분 저수온 스트레스를 겪고 있어 지속적인 폐사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여수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돔이 저수온을 경험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쇼크를 받아 결국 죽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은 살아 있는 물고기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폐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대도 수산 당국은 피해실태조사에서 육안을 통해 확인한 폐사량만을 피해로 보고 보상한다는 방침이어서 어민들의 원성이 높다. 김모(39ㆍ돌산읍 군내리)씨는 “동사 피해가 적조처럼 한 순간에 대량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 데다 이미 죽어서 뼈만 남은 것도 많다”며 “조사할 때 눈으로 보이는 것만 피해 보상해 준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영=이동렬기자 dylee@hk.co.kr여수=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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