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민단체들은 ‘빅브라더상’을 제정하여 ‘프라이버시 침해에 가장 기여한 기관 혹은 개인’에게 시상한 바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전자주민카드 개선사업도 유력한 후보였으나 선정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사업계획이 초기 단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일 열린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연구방향 설정을 위한 제2차 공청회’에서 발표된 내용대로라면 빅브라더상 수상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전자주민카드의 외관에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표기하지 않겠다는 기본 발상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청회에서 발표한 발전모델안을 보면 프라이버시 침해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단순한 신분 확인을 떠나 건강보험증, 교통카드, 금융카드와 연계하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온라인에서 사용될 인증서까지 담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전자주민카드를 이용할 때마다 그 안에 내장된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다른 곳의 컴퓨터에 옮겨져 더 많은 개인정보 DB가 생겨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등록번호 유출이 낳고 있는 갖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민등록증의 겉에 적는 대신 IC칩에 담아두고 사용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근본적 문제는 주민등록번호의 과다한 이용과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다양한 개인정보 기록을 하나의 카드로 통합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손쉽게 감시, 관리하겠다는 행정편의주의에 다름 아니다.
현재 국회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이를 위한 독립적 감독기구의 설치 등을 규정하는 ‘개인정보 보호 기본법안’이 발의돼 계류중이다. 반면 행정자치부는 4월까지 전자주민카드 발전모델의 연구를 완료하고 관련법을 개정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급 업무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전자주민카드 도입은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므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 이후에 추진되는 것이 옳다. 현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카드의 발급에는 수천억원에서 1조원 대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법안과 전자주민카드가 담게 될 개인정보 내역이 상충될 경우 엄청난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전자주민카드 도입 계획의 수립에 개인정보 보호라는 측면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기를 바란다.
김영홍<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장>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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