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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빗나간 주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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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빗나간 주거문화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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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투기의 진원지로 눈총 받는 강남지역은 주거문화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선도적이다. 끝없는 편의성 추구 및 고급 취향이 낳은 풍속도의 하나가 요란한 내부 개조다. 준공검사를 마친 아파트마다 대대적인 2차 공사가 벌어진다. 베란다를 트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준공 후 내부 개조에 따른 비용과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분양계약 때 옵션 신청을 받아 시공하는데도 효과가 없다. 모델하우스에서 본 것과 차이가 난다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조를 서슴지 않는 바람에 멀쩡한 자재들이 폐품으로 버려진다.

■ 2002년 말 도곡동 타워팰리스 입주 때 내부 개조공사로 멀쩡한 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이자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지만 이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부개조 바람은 넓은 평수의 고급 아파트일수록 심하고 다른 지역으로까지 전염되는 양상이다. 인테리어 모델하우스를 보면 고급 룸 살롱을 방불케 한다.

입주를 앞둔 아파트마다 내부 개조공사를 위한 차량이 꼬리를 물고 엄청난 양의 폐자재를 쏟아낸다. 엘리베이터는 자재와 사람이 뒤엉키고 소음과 분진 피해도 심각하다. 아파트 값이 오르고 과시욕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이 정도 불편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 새 아파트로 이사할 때 TV 에어컨 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과 침대 소파 식탁 등도 모두 새것 일색으로 교체하는 것 또한 새 풍속도다. 전에 쓰던 것들은 아무리 멀쩡해도 이삿짐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재활용 업체들이 수거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폐품으로 처리된다. 혹 유행이 지난 가전제품이 이삿짐에 포함되어 있으면 애프터서비스 직원들로부터 “아직도 이런 것을 그대로 쓰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공사를 하고 신제품을 파는 사람들은 일거리가 생기고 돈을 벌어 좋지만 아무래도 ‘딴 세상’ 풍경인 것만은 틀림없다.

■ 수년 전 캐나다의 한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은퇴한 교장선생님 집이었는데 구형 TV를 비롯해 모든 가재도구가 손때가 묻은 것들로, 가족들의 생활사를 보는 듯했다.

우리와 같은 낭비투성이 개조는 상상도 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강남의 아파트 개조바람을 보면 언제쯤 소박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미덕으로 여겨질지 아득해 보인다. 스웨덴이 2020년까지 대체에너지 개발로 석유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겠다고 선언했다는 외신은 더욱 꿈 같은 얘기로만 들린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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