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 고등학생 A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2년 전부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어요. 밤에 잠도 오지 않고 요즘은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요. 칼로 손목을 그은 적도 있어요.”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정신보건센터에는 이처럼 막다른 길에 내몰린 청소년과 시민들의 애처로운 호소와 한숨소리가 줄을 잇는다.
광역센터 1곳을 비롯, 11개 자치구에 설립된 정신보건센터는 우울증 등 각종 정신문제를 상담하고 사회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긴급한 경우에는 상담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정신상태를 진단하고 정신병원 입원과 치료를 도와주는 비상 조직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지난해 광역센터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5,330건에 이른다. 상담 사연도 다양하고 절박하다. 부모님에 떠밀려 싫어하는 악기를 전공으로 맡게 돼 자살을 결심했다는 10대부터 취업을 못해 우울증에 걸렸다는 20대, 남편과의 대화단절로 지하철로 뛰어 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30, 40대 주부도 있었다. 또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50대 중년 가장의 호소도 들어온다.
야근 상담을 하는 전준희 위기관리팀 팀장은 “올 1월에 접수된 577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3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라며 “학원, 대입 등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충동적 자살을 상담하는 10대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를 다투는 긴급한 상담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신보건센터는 여러 차례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이 달 초 딸과 함께 동반 자살하려던 40대 미혼모가 결행을 하지 않은 것도 광역센터의 활약 덕분이다. 몇 년 전부터 줄곧 전화상담을 해 오던 그가 새벽 2시 상담센터로 전화를 걸어 자살하겠다고 알려오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서 자살을 막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친구에게 돈 사기를 당해 우울증에 빠져 회사도 그만두고 자살을 시도했던 32세의 한 남성도 상담원의 끈질긴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광역정신보건센터에는 정신보건사회복지사나 정신보건간호사 정신보건인상심리사 등 정신보건전문요원 관련 상담전문가 30명이 포진해 있다. 7명으로 구성된 ‘위기관리팀’은 24시간 대기하며 전화상담과 인터넷 채팅상담을 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하루 평균 30여건이 접수되고 있는데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상담건수가 많아진다”며 “대화상대가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말벗이 돼 주기만해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역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상담 중 우울증에 의한 자살 충동 호소는 44%에 이르며 주로 낮 시간대에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해 20분 미만으로 상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의 www.suicide.or.kr 1577-0199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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