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전 마주 앉았다. 유 장관이 신임 인사차 국회 대표실로 박 대표를 찾아와서다.
지난해 8월 “박근혜씨를 인간적으로 별로 안 좋아 하고 정치적으로 싫어한다”고 공개 성토했던 유 장관이다. 하지만 이날은 깍듯한 예를 갖췄다. 하지만 막상 대화가 시작되자 유 장관은 정책적 소신을 분명히 하며 고개를 쳐들었고, 박 대표도 뼈있는 농담으로 받았다. 10여분의 대화는 표면적으로는 부드러웠지만, 내용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박 대표가 먼저 “복지문제가 중요한데 좋은 기반을 잡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 달라”고 주문하자, 유 장관은 “그리 하겠다“고 답한 뒤 “몇 가지 말씀드릴 것을 적어왔다”며 박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했던 수첩을 꺼내 들었다.
유 장관은 중간중간 수첩을 들여다보며 “퍼스트레이디로 국정을 이끌었던 분으로서 아직도 소록도에서 자원봉사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국민연금 문제가 국회에서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박 대표께서도 자기 생각보다는 지도자로서 잘 해달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생각이 자신의 구상과 거리가 있음을 우회 지적한 셈이다.
이어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법을 받아들이면 근본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자, 유 장관은 곧바로 “모든 제도는 약점과 논란이 있으니 한발씩 물러나서 잘 도와주면 좋겠다”고 거듭 한나라당의 양보를 요구했다. 이에 박 대표는 “정부안은 재정고갈을 늦추는 정도지, 근본적 재정 고갈을 막는 길이 아니다”고 공박해 논란이 계속됐다.
유 장관은 말미에 “의원일 때는 일부러 싸우고도 하지만 장관일 때는 다르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곱게 간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배석했던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이 유 장관의 면바지 차림의 국회의원 선서 파문을 염두에 둔 듯 “정장을 하더니 국제신사가 됐다. 잘 어울린다”고 화제를 돌렸고, 유 장관은 “앞으로 그런 말을 듣도록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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