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거리’ 인사동을 유달리 사랑한 작고 문인 민병산(철학자ㆍ수필가), 박이엽(방송작가), 천상병(시인)을 추모하는 행사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최로 15일 저녁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미술관에서 열렸다.
추모행사에는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와 박이엽 선생의 부인 정인임씨, 민병산 선생의 조카 등 유족과 신경림 백낙청 구중서 황명걸 채현국 민영 정진규 반야월 윤익삼 씨 등 200여 명의 문화 예술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인사동이 거느린 문화의 거리, 전통의 거리라는 국제적 명성은 이들 문화인들의 각별한 애정에 힘입은 바 크다. 그 시점은 대략 1980년대 들면서부터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직후까지 문화인들의 주무대였던 서울 명동과 충무로가 60년대 중반 이후 유흥 및 상업지구로 개발되면서 종로구 청진동 관철동 일대로 옮겨왔다가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출판사들이 하나 둘 분산되자 인사동을 그 터전으로 삼은 것이다.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던 고 민병산씨는 그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작고할 때까지 일정한 거처 없이 독신으로 지낸 독특한 이력의 문인이었다. 과묵한 편이었으나 술과 대화를 즐겼고,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늘 젊은 시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정진규 시인은 “선생과 술자리에 앉으면 늘 동양철학과 문학에 대한 고급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당시 그의 곁을 지키며 즐겨 어울렸던 이들이 민영 신경림 황명걸씨 등이었다”고 회고했다.
원로시인 민영씨는 “인사동은 이들 문학인들이 모여든 것을 계기로 전통과 문화적 유목민들의 창의적 사고가 접목된 거리로 변했다”며 “이는 이 거리를 한없이 사랑하다가 떠난 그분들의 정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믿기에 추모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구중서씨는 “지금도 인사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전통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오니 감회가 깊다”며 “이제 남은 사람들이 그 정신적 전통과 문화적 풍요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는 고인들에 대한 회고담과 시 낭송, 음악과 춤 공연, ‘인사동의 음유시인’ 송상욱의 개인 시지(詩誌) 발간 10주년 기념행사 등으로 채워졌다. 고인들과 나눈 옛 인사동에서의 추억과 이날 행사의 흥에 젖은 이들은, 행사 직후 삼삼오오 어울려 이제는 사뭇 달라진 인사동의 어두운 풍경 속으로 스며들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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