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부산 장림2동에 6~15층 건물 3개동으로 구성된 J아파트가 준공됐다. 2002년 11월 J아파트의 남동쪽 방향으로 50여㎙ 떨어진 언덕 위에 20층 건물인 K아파트가 세워졌다. 아침 무렵에 햇볕이 드는 시간이 줄었지만 J아파트 주민들이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2003년 4월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25층 규모의 7개동으로 구성된 S아파트 단지가 남서쪽 방향으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섰다. J아파트 주민들은 꼼짝없이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햇볕을 잃어버리게 됐다.
K아파트가 없을 때는 물론이고, S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J아파트 주민들의 일조권 침해는 법적으로 ‘용인할 만한’ 수준이었다. 법원이 동짓날을 기준으로 일조 시간이 오전9시∼오후3시 연속으로 2시간 이상 확보되거나, 오전8시∼오후4시 총 4시간 이상 확보되는 경우 는 일조권 침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파트가 5개월 간격으로 완공되면서 J아파트의 일조 시간은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전10시30분 이전에는 해가 뜨는 방향에 있는 K아파트가 J아파트의 햇볕을 가렸다.
또 오후에는 해가 지는 방향쪽인 S아파트 때문에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J아파트는 두 아파트에 둘러싸여 일조 시간이 하루에 1~2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J아파트 주민들은 두 아파트의 건설사를 상대로 일조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21일 “피고들은 해당 원고들에게 공동으로 J아파트의 재산 손해액의 50~70%와 위자료 50만~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민법상 공동불법행위는 행위자 상호 간의 공모나 공동 인식이 없더라도 성립할 수 있다”며 “거의 같은 시기에 건축된 두 아파트가 피해 건물에 대해 일조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해 건물의 건축자 등은 피해 건물 주민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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