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결혼식을 마친 뒤 피로연에서 얼큰하게 취한 늦깎이 신랑 A(40)씨는 신혼여행 첫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부산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전기 충격기의 ‘짜릿한 맛’을 봐야 했던 것.
승무원들은 비행기 이륙 직전 착석 요구에 불응하면서 바닥에 드러눕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던 그에게 더 이상의 손 쓸 방법이 없자 전기 충격기를 사용했다.
‘기내 난동(Air Rage)’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지난해 기내 난동은 모두 61건. 지난해 7월 처벌을 강화한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효됐지만 전년 대비 5건을 감소시켰을 뿐이다. 비행 중 난동은 승객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해 불상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난동은 신분과 지위를 막론한다. 지난해 7월 자카르타발 인천행 대한항공 항공기 내. 중년의 한 신사가 승무원에게 기내식 접시를 던지고 목을 조르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서울의 모 대학 교수로 밝혀진 그는 승무원에게 와인을 요청했지만 과음을 우려한 승무원이 이를 만류하자 일을 벌였다. 그는 조종실까지 진입하려다 결국 포승줄에 묶여 입국하는 수모를 겪었다.
기내 난동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 같은 음주. 지난해 61건의 난동 중 22건(36%)이 음주에서 비롯됐다.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알코올 음료를 소량만 제공하고 있지만 탑승 전에 이미 취할 대로 취했거나 면세점에서 구입한 술을 기내에 반입해 몰래 마시는 주당들을 당하기는 힘들다. 음주 승객들은 취기를 못 이겨 담배 한 모금은 예사고 이를 말리는 승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 그리고 성추행을 일으키기도 한다.
외국 항공기를 탔다고 술이 안 취할 리 없다. 국내에 취항하는 외항사 관계자는 “다른 항공사에 비해 여승무원들의 몸매를 다소 돋보이게 하는 유니폼 때문에 여승무원들에 대한 음주 승객들의 성추행도 잦아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안전법 개정안은 기내 소란행위나 흡연 음주 약물복용 후 타인에게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 성적 수치심 유발, 휴대폰 등 전자기기 사용 등에 대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대한항공의 2005년 상반기 기내 난동 승객 대부분은 훈방 또는 불구속됐고, 벌금도 30만원이 최대였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일본항공(JAL)에서는 기내에서 흡연한 승객이 실형을 산 적도 있다”며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관련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사에서는 기내 난동을 부린 승객을 ‘감시승객’으로, 난동 3회가 되면 ‘기피승객’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기피승객은 항공기 탑승은 물론 예약도 거절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피승객은 대한항공 10명, 아시아나항공이 5명이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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