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최근 지인들과의 사적 모임에서 불쑥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2ㆍ18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의장이 지방선거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여당 의장이 찾아와 연대나 협력을 요청하면 덥석 협력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체 할 수도 없다는 것이 고민의 요체였다.
고 총리는 이어 “중도실용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위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고민 중”이라고 속내의 일단을 내비쳤다. 이른바 범(汎)민주양심세력, 내용적으로는 반(反) 한나라당 세력의 대안으로 자리잡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고 전 총리가 고민하는 만큼 주변의 조언과 해법 제시도 다양하다. 가장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정치참여 시기를 5ㆍ31 지방선거 이전으로 잡느냐, 이후로 설정하느냐 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당연히 지방선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조기참여론이다.
우리당 김근태 상임고문만 하더라도 8일 고 전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협력을 요청했고, 민주당과 국민중심당도 지방선거 이전의 출전을 꾸준히 권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은 3월 창당 선언과 함께 고 전 총리를 대선후보로 옹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정치참여의 방법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신당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고,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연합체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여전히 “정치권이 너무 서두른다”는 말로 조기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정정당 입당이나 신당 창당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정치연합체 구성도 여러 세력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방선거의 판세가 예측불허다. 섣불리 참여했다가 결과가 좋지 못하면 ‘고건’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도 신중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핵심 측근들은 지방선거 이후 정치참여를 견지하고 있다. 그런 논리에는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 이후 대규모 정계개편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바로 그 대목에서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고민이 있다. 지방선거 이후 정치참여를 정답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여권이 예상외로 선전을 할 경우 고 전 총리의 입지는 축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 측면을 적절하게 고려,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에 참여하지는 않되 외곽에서 상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당의 새 당 의장과 회동, “범중도개혁세력의 통합에 동의한다”는 원칙적인 합의를 한 후 느슨한 형태의 정치연대를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정 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창당도 하지 않지만 우리당이나 민주당 후보를 방문,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고 전 총리는 중도개혁세력을 먼저 규합해 이를 통해 각 당과 통합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어떤 형식으로라도 선거 전에 미리 연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새 정치 구현을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울러 측근들도 “지방선거 전 정치참여, 연합공천 등은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의 최종 선택이 어디일지…정치권의 시선은 예민하기만 하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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