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날 양극화는 박정희 시대의 불균형 성장전략이 뿌리라며, 그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한 이른바 ‘서강학파’를 비난한 것은 여러 점에서 황당하다.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란 제목의 글은 학술적 논문이나 언론의 분석기사로 어울릴 만하다.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국정의 중추인 청와대가 특별팀까지 만들어 이런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청와대가 그렇게 한가한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과거를 돌아보며 냉철한 반성 위에 새로운 미래전략을 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공과를 구분하지 않고 송두리째 과거를 부정한다면 교훈을 찾으려는 자세가 아니며, 나아가 오늘의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목적이라면 역사왜곡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번 글은 불행히도 그런 심증을 불러일으키며 경제 분야에도 과거사 청산의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한국경제가 이룩한 압축성장은 ‘파이부터 키우고 보자’는 불균형 성장전략을 바탕으로 했고,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저개발국들이 초기에는 이러한 발전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개발연대 경제정책을 주도한 고도성장의 주역 서강학파에 대해 공은 인정하지 않은 채 양극화의 주범처럼 매도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불균형 성장이 양극화의 뿌리라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극찬했다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보고서 자체가 양극화를 범세계적 현상이며 성장률 하락, 세계화, 지식정보화 등이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양극화는 참여정부 들어 더 심해지지 않았던가. 청와대에 대한 국민의 주문은 과거문제에 대한 학문적 규명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이다. 과거에 쏠린 눈을 지금, 여기로 돌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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