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림원의 ‘이삭줍기- 세계문학시리즈’가 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김석희씨와 장경렬(서울대 영문) 허남진(서울대 철학) 교수 등 세 기획위원이 “21세기 탈 근대적 사조에 부응하고자 먼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는 고전 가운데 소개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묻힌 작품들을 발굴”해 2002년 봄부터 소개하고 있는 기획이다.
이름이 소박하게도 ‘이삭’이지만 그 가치는 ‘숨은 진주 찾기’라 할 만큼 값지다.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 로버트 쿠버의 ‘잠자는 미녀’, 호프만의 ‘스퀴데리 양’ 등….
환상문학의 선구자인 프랑스 작가 카조트(1719~1792)의 소설 ‘사랑에 빠진 악마’(최애영 옮김, 9,000원)는 그 18번째 책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던 프랑스의 시인 테오필 고티에의 ‘마드모아젤 모팽’,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로 더 유명한 한스 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 사드의 ‘사랑의 범죄’ 등 50여 편도 근간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악마’가 발표된 18세기 후반은 중세적 미망을 딛고 선 이성과 합리의 계몽주의가 농익고 짓물러, 이성마저 회의 되던 시기다.
문학적으로는 고전주의의 단정한 껍질이 갈라지면서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물기가 배기 시작하던 즈음. 작가 카조트는 ‘사실’과 ‘낭만’의 경계에서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악마 ‘베앨제뷔트’를 부활시킨다.
그의 악마는 당대의 이항 대립적 가치-이성과 열정, 도덕과 욕망, 자연과 초자연, 실재와 비실재 등-의 경계 위에서 시대를 희롱하며 나아간 존재였다.
이야기는 25살의 귀족 청년 ‘알바로’와 악마의 사랑 이야기다. 알바로에게 반한 악마가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이성과 논리로, 고혹적인 유혹과 순종적인 이미지로 몸부림치는 비탄과 좌절과 희망과 환희의 과정, 그리고 알바로가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주저하고 갈등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사랑을 위해 악마는 변신을 거듭한다. 청순한 여인으로, 뇌쇄적인 팜므 파탈로, 버림받은 가련한 인간으로. 출세와 부와 지식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는 사랑을 위해, 수세기의 고민 끝에, 악마의 신분과 권능을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예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참회할 수도 없었답니다.
당신과 같은 인간들이 예속되어 있는 모든 불운들에 굴복하고, 혼령들의 노여움을, 강신술사들의 냉혹한 증오를 한 몸에 받으면서 당신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나는 하늘 아래 가장 불행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난 당신의 사랑 없이는 또다시 불행할 거예요.”(82쪽)
알바로는 끝없이 회의한다. 거역하기 힘든 유혹과 가문의 허락이라는 관성적 가치, 이성의 저항 속에서 끝없이 회의한다. “가능한 것은 어디에 있으며 불가능한 것은 또 어디에 있는가?”
약혼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알바로를 설득하는 악마의 논리는, 당대의 쾌락지상주의를 비판하려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무색하게, 근대인의 자유 정신에 정연히 닿아있다.
“왜 그분(당신 어머니)의 의지가 우리의 결합보다 앞서야 하죠?…당신에게서 당신을 얻는 게 아니라 당신 어머니에게서 당신을 쟁취해야겠군요.”(89쪽).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비판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당신들의 의식(儀式)은 기만에 대비하기 위해 취해지는 예방책일 뿐이에요. 난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126쪽)
소설은 악마의 좌절, 즉 이성의 승리로 기운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 타협적 귀결에 쉽게 수긍하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베앨제뷔트’의 매력과 열정과 논리에 감염된 18세기의 독자들도 그러했을지 모른다.
그 힘이 ‘낭만’과 ‘환상’의 시대를 연 것은 아닐지. 그의 악마는 지금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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