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등 지음ㆍ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ㆍ1만1,000원
제인 구달(72)을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희망의 밥상’이 좀 낯설지도 모르겠다.
비료와 농약이 다량 투입되는 대규모 집약농법으로 재배한 곡류와 채소를, 인간의 식욕 만족을 위해 잔인하게 사육ㆍ도살해 상품으로 만든 육류를 더 이상 소비하지 말자는 주장이 이 동물행동학자에게서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야생 침팬지 연구로 업적을 쌓아온 그는 연구과정에서 침팬지 서식지가 갈수록 사라지고, 침팬지가 인간에게 포획돼 먹을거리로 이용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한다.
물론 밀렵은 아프리카에 사는 모든 동물들에게 닥친 심각한 문제였다. 과거의 사냥이 호구지책용이었다면 이젠 돈벌이만을 위한 사냥까지 생겨났다.
구달은 침팬지가 직면한 이런 문제가 아프리카가 당면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그 문제는 또 세계 곳곳의 엘리트사회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 파괴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그들의 생활방식과 직접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아가 ‘그러한 생활방식은 서구세계에서 시작되어 그들의 가치(또는 무가치) 및 기술과 함께 개발도상에 있는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구달은 ‘침팬지들을 돕기 위해서는 자신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연 자원을 자연 세계로부터 점점 더 많이 빼앗아 가고있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여러 나라를(한국도 최근 거의 매년 방문하고 있다) 다니며 정력적으로 환경보호와 평화사절 역할을 하고있는 구달은 젊은 시절부터 채식주의자다.
이 책에서 그는 ‘채식을 시작했을 때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자신의 체험을 들며 육식을 피하고, 대량 경작후 멀리 수송돼온 식재료를 사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대기업들은 대량 생산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몰아내고 숲을 밀어 농경지로 만들고 각종 성장 호르몬제와 화학비료, 항생제를 사용해 농작물을 길러낸다.
닭 소 돼지를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 범벅인 사료로 사육한다. 이렇게 생산된 농수산물과 축산물은 포장과 운송이라는 고비용 단계를 거쳐 대형 슈퍼마켓으로 옮겨진다.
구달은 이런 농ㆍ축산물이 값싸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없어진 숲을 되살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 농작물을 키우고 운반하는데 쓰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 비용, 엄청난 양의 물, 온갖 약물로 범벅된 농축산물을 먹은 우리와 자손들이 치러야 할 각종 의료비 등은 계산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육류 위주로 식단이 변해가는 문제도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 등이 1㏊의 농지에서 재배한 것을 가지고 1년간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계산했더니, 감자를 심으면 22명, 벼를 심으면 19명이었지만, 소나 양을 길러 쇠고기와 양고기만 생산하면 단 1, 2명에 그쳤다.
구달은 ‘육류 생산을 늘려서는 굶주린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지구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최소한의 고기만을 먹는 일’ 또는 ‘고기를 먹더라도 반드시 유기농법으로 방목해 기른 소의 고기만 먹’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식이나 유기농 운동이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달은 미국에서 유기농 식품을 자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연 평균 소득이 4만3,280달러(중산층)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거론한 뒤 ‘중요한 것은 유기농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면 가격도 하락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공급업자들은 주문을 늘릴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농부들이 안정적인 시장을 갖게 됨으로써 유기농을 계속할 힘을 얻는다’며 가까운 곳에서, 서로 손잡고 이런 움직임을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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