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9일 당선되자마자 고건 전 총리와의 만남 약속을 잡은 것은 지방선거를 위한 범(汎)여권 연대 추진의지를 가늠케 한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절박한 정 의장으로서는 한치도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우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정 의장으로서는 바닥을 기는 현재의 당 지지로는 지방선거 패배가 명확한 상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부세력인 고 전 총리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고 전 총리 입장에서도 지방선거가 여야 대결로만 일관된다면 자신의 입지가 약화할 우려가 있다. 지방선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남 자체가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연대 가시화라는 상징적 효과도 있다.
때문에 두 사람 회동에서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에 대한 얘기가 집중적으로 오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거론될 수 있는 방안은 고 전 총리의 입당이겠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적다. 고 전 총리가 승산이 분명하지 않은 게임에 선뜻 발을 담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 전 총리와 지역적, 성향적으로 지지기반을 공유하는 정 의장 입장에서도 고 전 총리의 입당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느슨한 연대방안이 나올 수가 있다. 고 전 총리가 입당은 하지 않은 채 우리당 후보에 대한 지지방침을 밝히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당은 고 전 총리가 추천하는 인사들을 우리당 후보로 내세워 지원하는 형태다. 그러나 고 전 총리가 아직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정치참여와 정계개편을 도모하고 있어 이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당의 ‘강금실 서울시장 카드’도 주목할 대목이다. 정 의장이 강 전 법무장관을 간접적이나마 접촉키로 한 것은 특유의 몽골기병식 압박으로 보인다. 선택을 주저하는 강 전 장관의 결단을 끌어내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것이다.
한편 정 의장은 이날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를 방문,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유가족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유신시대 사법살인’이라고 불리는 인혁당 희생자와의 만남을 첫 일정으로 잡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정 의장은 “불행한 박정희 독재 시대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시대의 소명”이라며 “대구가 어두운 과거역사를 청산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여는데 앞장서달라”고 강조, 한나라당과 각을 세웠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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