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경주가 죽어가고 있다. 70-80년대까지만해도 거리마다 관광객들로 붐비던 활기찬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생기를 잃은 지 이미 오랜 듯 힘없이 축 늘어진 거리곳곳의 한산한 풍경은 ‘세계적인 국제관광지’는 커녕 관광지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다.
70-80년대 연 평균 13%씩이나 늘어나던 외국관광객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고 내국인 증가세도 미미한 실정이라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않고 있다.
경주시가 역사문화도시조성계획과 방폐장유치를 계기로 옛 영광을 되찾는다며 호들갑을 떨고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다. 만나는 관광업소와 상인들 마다 “영업이 최악”이라며 아우성이다.
▦위기의 관광경주 경주 관광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보문관광단지. 6개 특급호텔은 지난해 10월부터 평균 객실가동률은 60%선으로 전년 같은기간보다 5% 가량 하락,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텔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연평균 가동률은 60∼65%로 외형상 10여년전과 큰 차이는 없지만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라며 “과거에는 개인과 외국인등 고급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객실만 채우다보니 부가가치율이 낮은 단체와 내국인이 많아 돈이 안된다”며 대부분 적자경영이라고 말했다.
보문호에서 감포방향으로 가다 왼편에 보이는 신라촌 공사현장. 6만여평의 부지에 신라시대 마을을 재현해 체험관광의 모델케이스로 삼겠다는 신라촌은 97년 공사중단후 방치돼 흉물로 변했다. 녹슨 철조망 안에는 어른키 보다 더 큰 잡초만 무성하고 거의 다 지은 초가는 당장이라도 무너질것만 같다.
보문단지와 불국사를 잇는 보불로변에 2만여평에 86년 조성된 경주민속공예촌. 전통 골기와와 초가로 이뤄진 공예촌은 그 자체로 볼거리지만 거리는 찬바람만 횅하니 불고 있다.
신라시대 공예기술을 보존ㆍ개발하기 위해 금속 도자기 석재공예등 6개분야 18개 업체가 입주, 전통 토기등을 제작, 전시판매중이지만 경영난으로 벌써 2∼3개 점포는 비어 있다.
16일 저녁에 만난 한 토기 판매점 관리인은 “오늘 개시도 못했다. 4∼5년전까지는 비수기라도 방학때면 체험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제법 있었는데 요즘은 구경도 못해 명장선생님은 아예 가게에 나오도 안 한다”며 “주말이면 찾는 사람이 좀 있지만 구경만 하고 가버린다”고 말했다.
관광객수와 직결되는 식당가도 된서리를 맞고있다. 경주지역의 대표적인 먹거리 거리인 팔우정 로터리의 해장국 20여집은 존립위기를 맞을 정도다. 경주시청사가 동천동으로 옮겨간 데도 원인이 있지만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손님이 50%이상 줄었다.
20년째 이곳에서 해장국을 팔고 있는 송모(63)할머니는 “24시간을 2교대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손님이 없기는 처음이며 하루 4,000원짜리 해장국 20그릇을 팔지 못하는 때도 비일비재하다”며 “예전에는 관광시즌의 경우 경주유적지를 관광한 대형관광버스들이 줄을 이어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조차 구경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경주시내 중심상가인 중앙상가의 타격도 심각하다. 중앙상가에서 만난 한 부동산 업자는 “한 때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던 이곳에 현재 하루에 1개 꼴로 점포가 문을 닫는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폐점한 점포수만 100여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수학여행단 등이 주고객인 불국사앞 여관촌은 더 심각하다. 35개 가량의 유스호스텔ㆍ여관중에 해가 떨어졌지만 간판에 불이 켜진 곳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D유스호스텔 종업원은 “정부가 금강산관광 보조금 지급이후 수학여행단이 급감한데다 그나마 콘도에서 유치원생까지 싹쓸이 해 가는 바람에 어쩌다 한두명 찾는 개인손님을 위해 난방을 할 형편도 안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경주를 찾은 관광객은 외국인 52만6,000명, 내국인 695만6,000명등 748만1,000명으로 내국인은 10년전보다 40% 가량 늘었지만 외국인은 겨우 5,000명 증가에 그쳤고 2000년 57만3,000명을 정점으로 오히려 내리막길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368만여명에서 6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위기는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때문 경북관광협회 홍준흠(59)사무국장은 “80년대까지 대규모단체관광객들이 줄지어 불국사와 고분, 박물관등을 둘러보고 떠나는 것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개인, 가족단위의 생활체험형 관광을 선호하고 있는데 경주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여기에다 지자체 실시후 경쟁적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했는데 경주는 상대적으로 투자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경주는 국보 31개 보물 78개등 300개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할 정도로 시전체가 박물관이지만 그냥 보여 주는 것 말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날 경주에서 만난 한 관광가이드는 “경주는 석굴암 불국사 천마총등 다른 어느곳에서 ?수 없는 훌륭한 문화재가 있지만 그냥 보는 것으로 끝”이라며 “문화재 외에는 다른 볼 것, 놀 것, 즐길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북 문경시의 지난해 관광객은 407만여명으로 10년전보다 10배 이상, 안동시도 300여만명으로 7∼8배 증가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등 접근성이 좋아진점도 있지만 전통찻사발축제와 국제탈춤페스티벌등 걸출한 문화축제를 육성했고 철로자전거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경주지역 문화운동단체인 신라문화원 진병길(42)원장은 "경주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나 개발도 필요하겠지만 이전에 업소 종사자들과 시민들이 백화점 직원 이상 가는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며 "경주시민들에게는 애증의 복잡한 존재인 문화재를 스스로 가꾸고 사랑할 때 경주시민들의 생활상도 하나의 관광자원이 돼 다시 찾는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주=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이정훈기자 jhlee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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