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슈퍼볼(Super Bowl) MVP 하인스 워드(30ㆍ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기사가 거의 2주 가까이 국내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워드가 MVP로 선정되자 스포츠신문은 물론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까지 1면 톱으로 다룬 것을 시작으로 워드의 성공신화와 그를 키워낸 어머니 김영희(55)씨의 사연 등 워드와 관련된 것이라면 빠짐없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미식축구는 야구 농구와 함께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3대 스포츠의 하나다. 팀 플레이를 중시하면서도 스타를 탄생시키는 특성 때문에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슈퍼볼은 미 프로풋볼리그(NFL)의 양대 컨퍼런스의 챔피언 팀이 왕중왕을 가리는 북미대륙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다.
●순혈주의에 집착한 보도 관행
만약 하인스 워드가 없었다면, 그리고 워드가 MVP로 뽑히지 않았다면 국내 언론이 이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까. 보통 때 같으면 체육면 박스기사로 처리하면 알맞다. 이런 보도관행에 비춰 보면 워드에 대한 보도는 파격적이고 이례적이다.
우리 언론들이 워드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집착한 결과다. 물론 온갖 신고(辛苦)를 딛고 프로풋볼 스타가 된 워드와 그런 혼혈 아들을 키워낸 한국여인의 곡절 많은 사연은 감동적인 기사거리다.
‘워드 신드롬’이 일기 직전 일어난 홍해의 대형 페리 ‘알 살람 보카치오98’호 침몰사고는 희생자가 1,000명이 넘는 지구촌 대참사였으나 국내 보도는 워드의 그것과 대조를 이루었다.
‘20세기의 비극’으로 불리는 1912년의 타이타닉호 침몰사건(2,228명의 승선자 중 1,523명 사망) 이후 최대의 해난사고였음에도 언론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희생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 귀국하는 이집트 근로자들이 아니라 유럽의 저명 인사들이거나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우리 언론들이 지구촌 뉴스를 다룰 때 습관적으로 갖다 대는 잣대의 하나가 한국 또는 한국인이 관련돼 있는가 여부다. 외신이 아무리 요란하게 보도해도 이 잣대에 맞지 않으면 심드렁한 반응을 보여왔다. 남아시아 쓰나미 참사 때 국내 언론들이 특파원을 보내 대대적인 보도경쟁을 벌인 것은 희생자 중에 한국인이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세계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전위적 전방위적 업적을 칭송해 마지 않는 것은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적을 초월해 새로운 영역의 예술세계를 개척한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이 하인스 워드를 대서특필한 것 또한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량이 탁월한데다 워드와 그의 어머니가 역경을 딛고 성공신화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핏줄에 끌려 신드롬을 일으켰다가 혼혈인에 대한 편견을 반성하며 순혈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지경에서는 낯이 뜨거워진다. 역사적으로 단일민족의 근거가 희박함은 증명된 터다.
그리고 갈수록 핏줄의 섞임은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결혼이 3만5,000여건에 이르고 50만을 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다. 농촌에서는 외국인 신부 없이는 대를 이어가지 못할 형편이다.
●핏줄 벗어난 지구촌 시야 필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냄비처럼 달아올라 열광하고 분노하는 풍토는 지금의 지구촌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수많은 코시안(Kosian)들이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주위로부터 이상한 눈길을 받는 현실을 방치해두고 ‘워드 신드롬’에 편승해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말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워드 신드롬을 계기로 순혈주의의 퇴조를 기대하는 시각도 없지 않으나 오히려 이 신드롬 자체가 순혈주의에 대한 미련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인류애까지는 아닐지라도 시야만은 크게 그리고 멀리 보자. 나만의 것,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에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지구촌을 사는 성숙한 자세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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