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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19 그리고 80' 이 철부지 노파, 사랑하지 않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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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19 그리고 80' 이 철부지 노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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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제 말 들리세요?” 청년의 달뜬 목소리. 누구나 한번 해봤음직한 말. 그러나 전화로 하는 말도 아닌데, 쫓기듯 뒤에 붙인 말은 뭘까? 그렇다. 비(非)상식적, 반(反)논리적이게도 여자는 막 숨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초(超)인습적이게도, 여자는 너무 늙었고 남자는 너무 젊다. PMC의 ‘19 그리고 80’은 약관의 청년과 미수(米壽)를 코앞에 둔 노파와의, 상식을 절(絶)하는 연애담이다.

88 올림픽 당시의 굴렁쇠 소년 윤태웅(25)이 건장한 체격의 배우가 돼 등장하는 무대라는 사실은 8, 9할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노파 모드로 분하는 배우 박정자(64)의 능란한 연기에 이르러 관객들은 무장해제될 각오를 해야 한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의 중년 여인,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에서의 철부지 노파 등을 거쳐 그가 도달한 할머니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즐거운 착시다.

박정자는 이 극에서 온몸으로 연기한다. 왈츠에 맞춰 손자뻘의 남자에 안겨 휙 도는 장면이 멋스럽기까지 해 보이는 것은 그가 연기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다. 한 번도 인간의 정을 느껴보지 못한 부잣집 도령이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분”이라며 모드의 이마에 키스하는 대목에서 객석은 공감의 정밀(靜謐)로 답한다.

그러나 이 연극의 구도는 소극(笑劇)에 가깝다. 부잣집 도령과 결혼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마다 않는 아가씨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이 연극의 기본 구도가 희극적 상상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배우 박정자가 있다. 박정자 버전의 모드를 만들어낸 중견 연출가 강영걸씨는 “박정자씨 특유의 카리스마가 능수능란한 연기로 거듭났다”며 “잊고 있던 한국적 특유의 인간성을 되살려낸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윤석화를 시작으로 김성녀 손숙 김지숙 양희경을 거쳐 박정자에 이르러 끝을 맺는 ‘여배우 시리즈’의 대미에 값하는 무대다. 강남의 풍경을 바꿔놓겠다는 각오로 출발한 우림청담 씨어터의 무대는 연극과 스타 시스템의 결합 가능성을 시험하며 순항중이다.

‘주변 여건상 주차가 불가하다’는 극장측의 사전 양해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극장을 메우다시피 하는 현상 역시 언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61년 연하의 남자가 죽어가는 할머니뻘의 여인에게 “당신 없인 살 수 없어요”라고 절규할 때 급기야 훌쩍이는 관객들의 존재는 그 같은 현상을 충분히 이해시킨다. 19일까지 우림청담씨어터.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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