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니콜라이 고골 원작, 지빌 그래핀 쇤펠트 다시 씀
겐나디 스피린 그림, 김서정 옮김
보림 발행ㆍ8,000원
러시아 작가 고골(1809~1852)의 단편 소설 ‘코’가 훌륭한 그림책으로 거듭 났다. 원작은 어른이 읽어도 이해가 쉽지 않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펴내면서 글을 간결하게 다듬고,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겐나디 스피린이 아름답고 꼼꼼한 그림을 붙였다.
고골의 ‘코’는 기이한 줄거리의 문제작이다. 어느날 한 남자의 얼굴에서 코가 사라진다. 코는 고위 관리 차림으로 거들먹거리며 시내를 활보한다. 코 주인은 쩔쩔 맨다.
코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굽실거리면서 “댁은 내 코가 아니냐”고 따지자 코는 오히려 “그게 무슨 소리냐. 나보다 계급도 낮은 것 같은데” 라며 호통을 친다.
어찌어찌 해서 코가 돌아오기까지 벌어지는 우스꽝스런 소동은 제정 러시아 말기 사회의 위선과 부패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조롱한다.
다들 제 잇속만 챙기고 관리는 뇌물만 밝히고 귀족들은 쾌락에 정신이 팔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고통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이를 바라보는 고골의 분노와 절망이 이 희한한 이야기 속에 싸늘한 웃음으로 담겨있다.
스피린의 그림은 감탄스럽다. 걸어다니는 오만방자한 코라니, 글로 읽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 놀랍도록 생생한 그림으로 살아나 독자에게 다가온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옷과 가구의 질감, 벽지의 무늬까지 치밀하게 묘사하는 그의 장기도 볼 수 있다.
이 그림책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호사는 작품 배경인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에르미타주 궁전, 카잔 성당,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등 명소와, 넵스키 거리를 오가는 마차와 사람들, 러시아 특유의 우울하고 창백한 하늘을 사실적으로 그려 본문 가장자리에 액자틀처럼 둘렀다.
글이 표현하지 못 하는 것까지 보여 주는, 그림책 특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책이다. 원작을 읽어본 어른 독자라면 이 그림책이 더 반가울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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