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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 의문사' 국가 배상 판결/ 국가범죄 손해배상 시효 불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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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 의문사' 국가 배상 판결/ 국가범죄 손해배상 시효 불인정

입력
2006.02.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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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이 손해배상 소멸 시효(時效)가 지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수지 김 사건에 이어 두번째다.

서울고법 민사 5부(조용호 부장판사)는 14일 최 교수의 아들 광준 씨 등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국가는 원고에게 총 18억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원칙적으로 시효(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의 종료로 소멸했지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정이 있거나 소멸시효를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한 사정이 있었다”며 “국가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국가가 사건을 은폐해 최 교수 유족들이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발표 때까지 진실에 접근할 수 없었던 점, 1988년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형식적 조사에 그친 점 등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자신의 명백한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면하려고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지금까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엄격히 해석해왔다. 소멸시효를 언제부터 계산해야 하는가가 재판의 주된 쟁점이었던 탓에 과거 군사정권 시절 벌어진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통한 배상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동아일보사가 언론통폐합 때 빼앗긴 동아방송을 되돌려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입대 관련 기록이 잘못돼 두 차례 군복무를 한 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배배상 청구 소송 등이 모두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기준으로 소멸시효 적용의 타당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한 사건은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한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1996년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기각했다.

이와 다른 결과를 내놓은 첫 판결은 2003년에 나왔다. 홍콩에서 남편 윤태식씨에게 살해당한 뒤 안기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된 수지 김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과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고 국가는 항소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적극적, 전향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최 교수 사건을 다룬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사건의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했다. 최 교수 사건의 경우 최 교수가 조사 도중 사망해 형사재판이 이뤄지지 못했고 따라서 다른 사건처럼 재심을 통한 명예 회복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처음부터 아예 유죄 판결이 없어 재심을 할 수 없는 사건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민사소송의 길을 막는 것은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의 유일한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의 아들 광준씨는 선고 직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법원이 최선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배상금 전부를 장학사업과 인권교육 및 연구를 위한 재단 설립에 헌납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멸시효란

일정기간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 권리가 소멸하는 제도.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권 소멸시효는 사유 발생일로부터 5년(예산회계법 96조), 사유 발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이다. 그러나 국가 기관이나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는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그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으로 규정한 민법 766조가 준용된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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