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심금을 울린 지하철 결혼식(15일자 9면)은 가짜였다. 가난한 연인의 결혼식을 가장한 이 연극은 충남 호서대 연극영화과 동아리 ‘연극사랑’이 기획, 제작한 한편의 게릴라 상황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휴대폰 동영상을 찍은 당사자는 10일 우연히 지하철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네티즌이었다. 그는 연극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16일 자신의 블로그에 “여자의 눈물을 보고 진짜라고 믿었다. 당황스럽다” 고 해명했다.
속은 것은 네티즌과 시민만이 아니었다. 상당수 언론이 거짓 연극에 춤을 췄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문제 제기를 한 언론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냥 스쳐갔을지도 모를 이 실험극은,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아름다운 사실로 포장되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인터넷상에서 연극에 출연한 학생들은 졸지에 ‘사기꾼’으로 전락했고, 동영상을 올린 네티즌은 본래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희대의 인터넷 낚시꾼”이라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 검증 시스템이 전무한 사이버 공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는 낚시꾼은 생소한 용어는 아니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혹은 장난 삼아 던지는 낚시꾼의 떡밥은 가짜 기사, 선정적이고 과대 포장된 제목, 연출된 동영상 등 다양하다. 이들은 진실성을 덧씌우기 위해 언론사와 기자를 사칭하기도 한다.
올해 초엔 줄기세포 논문 공저자인 김선종 연구원의 아버지를 사칭해 “황우석 교수팀은 실제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개발했다”고 쓴 가짜 고백문이 한달 동안 인터넷을 떠돌면서 네티즌의 눈을 흐렸다. 이 가짜 고백문은 정부 기관 홈페이지와 시민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화제였던 ‘개똥녀 사건’ 역시 인터넷 낚시질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개똥녀를 사칭한 가짜 사과 글은 전파를 타고 마치 사실인양 보도되기도 했다. 난치병 환자의 사진을 실어 네티즌의 호주머니를 터는 가짜 앵벌이도 인터넷 낚시질의 범주에 속한다.
인터넷 낚시질은 정보의 홍수에서 살아 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됐지만 이제 장난을 넘어 범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낚시질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인터넷 매체와의 속보 경쟁에 시달리는 기성 언론의 조급증, 게이트키핑(Gatekeepingㆍ정보의 취사 선택) 기능도 없이 편집권까지 마구 행사하려는 포털사이트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박성희 교수는 “지하철 결혼식 소동은 언론이 사실 확인이라는 기본적인 의무를 망각하고 신속한 보도에만 급급했던 결과”라며 “신문과 방송이 인터넷 매체에 비해 차별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정보에 대한 철저한 확인 절차를 통해 대중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위 여부가 불투명할 땐 이를 명시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김이삭 기자 hiro@hk.co.kr
■ "불신 부추겨" vs "신선한 자극" 떠들썩
‘지하철 결혼식’이 대학생들의 실험극으로 밝혀지자 인터넷은 또 한번 떠들썩해졌다.
소식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은 “속았다”며 허탈해 하고 있다. 네이버 아이디 ‘ilikegam’는 “이번 일이 용납된다면 계속 이런 식으로 연극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며 ‘처벌’을 주장했고 ‘intiffany’는 “앞으로는 감동적인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와도 사람들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일이 우리 사회를 불신의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옹호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htk100’는 “비록 학생들의 연극에 속았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며 “삭막한 생활에 신선한 자극이었다”고 했고, ‘dehore’는 “예술의 토양이 부족한 한국이었기에 생길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이들을 비판 또는 옹호하는 글들이 수백개씩 올라 왔다. 많은 네티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한때 접속이 안 됐던 연극과 게시판에는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실험극 남자 배우의 글도 올랐다.
실험극을 연출했던 신진우(25)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서민적인 공간인 지하철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연극으로 감동을 안겨드리고 싶었다”며 “지하철 안에서 빨리 끝내야 하는 시간적 제약이 있었던 데다 관객들도 유동적이어서 미처 연극이라는 사실을 승객에게 알리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아산=이준호 기자 junhol@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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