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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살' 초등생 빗속 장례식/ 어린영혼 상처 씻듯 하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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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살' 초등생 빗속 장례식/ 어린영혼 상처 씻듯 하늘도 울었다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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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내 착한 딸아!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뜨거웠니…. 내 가엾은 딸아! 몸은 가도 넋은 이 못난 애비 품에서 떠나지 말아주렴. 널 보낼 수 없으니 이 애비 가슴에 살아다오.”

부모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통곡은 전염돼 강물을 이뤘다. 살아남은 게 죄였다. 아무리 눈물로 씻고 씻어도 슬픔은 지워지지 않았다.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 당하고 무참하게 살해당한 초등학생 허모(11)양의 장례식이 22일 오전 6시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하늘엔 이른 봄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부모는 “내 딸을 살려내라”며 오열했다. 조문객 50여명도 따라 울었다.

하얀 조화(弔花)보다 순결한 한 떨기 어린 영혼은 부디 극락정토에 가기를 비는 불공 속에 비정한 이승의 악몽을 털어냈다. “부디 저 세상에선 몹쓸 짓을 당하지 마라.” 합장한 조문객 하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허양의 시신은 오전 7시10분쯤 서울 용산구 금양초등학교 교정에 닿았다. 교장 선생님 등 교직원 50여명이 두 줄로 늘어서 허양을 맞았다.

운동장엔 방학이었지만 동무들과 학부모 200여명이 달려와 허양의 마지막 등교를 함께 했다. 사촌오빠의 손에 들린 허양의 영정은 정든 학교를 잊지 않으려는 듯 천천히 교정을 돌았다. 허양의 부모도 묵묵히 딸의 뒤를 따랐다. 허양은 선생님에겐 “얌전한 아이”, 동무들에겐 “함께 공부한 잘 웃는 친구”로 영원히 남았다.

허양의 시신은 영원한 영혼의 방학을 위해 오전 9시50분 경기 고양시 벽제화장장으로 옮겨졌다. 허양의 관이 화장로로 옮겨지자 유족들은 넋이 나간 채 무너졌다. 외할아버지는 자리를 피했고 외할머니는 대답 없는 손녀의 이름을 불렀다.

속이 검게 탄 아빠는 딸의 뼈가 추려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딸의 영정을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아빠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한단다. 앞으로도 가슴속에 담은 너에게 계속 잘해줄게.”

목메인 고백은 어느새 통곡으로 변해있었다. 부모를 울린, 아니 온 세상을 울린 아이의 영혼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영정 속 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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