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화의 거목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 화백이 작고 30주기 특별전을 통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는 주제로 덕수궁미술관에서 17일부터 5월5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고인의 미발표작 6점과 중앙화단에 처음 공개되는 풍경화 1점 등 모두 80여점이 걸렸다.
전시는 금강산 작가로만 알려진 소정이 도자기에 그린 도화부터 평범한 농촌과 근대 도시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사를 화폭에 담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공개작 ‘설경’(연도미상)은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연도미상의 6폭짜리 병풍 그림으로, 눈쌓인 준령 아래 고즈넉하게 안긴 농가 풍경을 치밀하고 서정적으로 그렸다. ‘영도교’(1948년작)는 부산 동아대박물관이 1970년대부터 소장했지만 전시에는 처음 나왔다.
부유한 한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소정은 조선말 대화가였던 외조부 조석진 밑에서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아버지와 외조부, 어머니, 첫 아내와 연이어 사별하고 재혼도 실패로 끝나는 불운을 겪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철저히 비관변 작가의 길을 걸으며 방랑과 유랑으로 30대를 보냈고, 해방후 중견작가로 입지를 굳혔으나 50년대 중반 국전 심사 비리를 폭로한 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불온한 세상을 인정할 수 없었던 외골수 기질은 유랑을 통해 우리 산야의 아름다움을 체득하며 평생 꿈꾸던 이상향에 닿은 셈이다.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과 함께 한국 근대 수묵화의 양대 거목으로 불리는 소정이지만 청전이 일찍 각광받은데 비해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1976년 작고후 재평가 됐다.
화단의 주류와 결연하고 유랑을 통해 화업을 완성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전통에 서구 풍경화 양식을 결합,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화풍을 창조해낸 소정 양식은 한국 근대 수묵화의 전범으로 추앙받고 있다.
최은주 덕수궁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소정의 삶과 화업의 발자취를 좇아 그가 꿈꾸던 한국적 이상향과 이를 잉태한 시대정신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재평가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022-0613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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