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미친 남자
정종화 지음
맑은소리 발행ㆍ1만8,000원
자신을 ‘영화 연구가’로 소개하는 정종화(64)씨.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는 부산 서대신동 길거리에서 포스터 한 장에 눈길을 빼앗긴다.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
꽤 먼 거리를 걸어 극장까지 간 그는 입추의 여지 없는 관객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선풍기 하나 없는 극장 안은 찜통이었고 땀내로 퀴퀴했다.
하지만 이내 영화에 빠져들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박수도 보냈다. 이후로 두고 두고 ‘역마차’가 생각났다. 정종화씨는 영화 열병에 걸렸다.
정씨는 훗날 월간 ‘시네마’를 발행하고 영화기획협회의 이사, 감사를 지내는 등 영화와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특히 포스터 등 영화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소장한 자료로 전시회를 100회나 열었다.
‘영화에 미친 남자’는 그런 정씨가 지금까지 본 영화와 그 영화에 대한 인상을 소개한 글 모음이다. ‘자이언트’ ‘아리랑’ ‘청실홍실’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허리케인’ ‘카사블랑카’ ‘아프리카의 여인’ 등 국내외 영화 805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영화 이야기 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에 대한 것이다. 극장비를 대기 위해 철물상, 쌀집에서 일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자 밥을 굶고(고교 시절 그는 자취를 했다) 쌀을 내다 팔았다.
팸플릿을 얻는 일이라면 죄의식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큰 형의 친구집에 가 몰래 책상을 열어 영화 전단을 옷 속에 감추었고, 책장 자물쇠를 따 포스터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추운 겨울 극장 벽에서 ‘오해 마세요’의 포스터를 발견하고는 3시간이나 떨다가 야음을 틈타 뜯어오기도 했다.
책에 실린 옛 영화 포스터들은 지난 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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