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부터 작년까지 강원도내에서만 중학교 3개를 포함해 373개의 시골 학교가 문을 닫았다. 올해 문을 닫는 학교도 본교 1개, 분교 3개 등 4개이다. 농어촌 학교 공동(空洞)화는 강원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신입생이 한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강원, 경남ㆍ북, 충남ㆍ북 등 전국에서 54개에 이르고 신입생이 단 1명인 학교도 57개나 된다. 전교생이 50명 이하인 초미니 학교도 공립 초등학교 440개 중 174개(39.2%)나 되는 것으로 파악돼 시골학교 통폐합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의 거울이나 다름없는 삼척시 도계읍 장원초등학교 대교(大橋)분교의 마지막 수업과 철원군 근남면 잠곡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모습을 화보로 엮었다.
▲ 삼척 장원초교 대교분교 62년만에 마지막 수업 "한명 위해선 학교 유지하긴 힘들어요"
“오빠들이 거꾸로 나이가 한 살 어려져서 계속 같이 다니면 좋겠어요.” 노선 버스도 없이 차로 20분 걸리는 장원초등학교로 가게 된 4학년 여학생 김화솔은 오빠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윤희, 진원동 6학년 남자 두 학생의 졸업으로 대교분교는 62년 동안의 신리 마을의 ‘서당’ 역할을 다하고 올해 문을 닫는다.
본교에서 열리는 졸업식을 앞두고 13일 대교분교의 마지막 세 학생이 마지막으로 등교를 하고 마지막으로 하교를 했다.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 5학년으로 올라가는 화솔이 한명을 위해서 학교를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논리적으로 따져도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농어촌 육성정책과 모순되는 점이 있죠. 학교마저 남아있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농촌으로 돌아오고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겠습니까?” 대교분교의 마지막 선생님이 된 김동원(38)씨 역시 농어촌 공동화와 소규모 학교 폐쇄의 악순환이 안타깝기만 하다.
2002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된 후 신리 마을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너와 숙박촌과 송이 체험장을 만드는 등 ‘새 농어촌 건설운동’으로 조금 들떠 있지만, 학교가 없는 이 마을에 젊은 영농 후계자들이 정착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림 그리기, 일기장 등 방학 과제물을 제출하고 나서 책상과 걸상도 모두 치워진 텅 빈 교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개학식과 모든 학사 일정이 끝났다. 그러고도 세 학생은 다정한 오누이처럼 두시간이나 눈싸움을 하고 시소를 타고 철봉에 매달리며 놀았다.
멋진 소방관이 되겠다는 원동이, 아직은 꿈이 다양한 윤희, 작가가 되고 싶은 화솔이, 운동장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 위에 세 개의 그림자를 남기고 마지막 학생들이 교문을 나선다. 한때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바글대던 대교분교의 마지막 모습이다.
▲ 철원 잠곡초교 51회 마지막 졸업식 "나이든 동창들 교가 부르며 목이 메어"
학생 다섯명과 교직원 여덟명으로 단출하던 학교가 15일 아침부터 분주하다. 학부형과 군내 교육관계자, 동창생 등 50명이 넘는 외부 손님들이 다목적실을 가득 메웠다.
“지금부터 잠곡초등학교(교장 석관식) 제51회 졸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마지막 졸업식의 사회를 보는 정상열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다. “졸업장 김종경, 졸업장 김정수, 졸업장 김민수.”
그 후로도 이 세 학생의 이름이 번갈아 가며 계속 이어졌다. 22개나 되는 학내ㆍ외 상을 이들 세 명이 싹쓸이하는 진풍경에 졸업식장에서 간간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쑥스러운 미소를 짓기는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침내 졸업생을 대표해 김민수 군이 송사도 답사도 아닌 ‘학교를 떠나며’라는 글을 읽어내려 갔다.
“사랑하는 아우들이여... 51회 졸업인 오늘로서 폐교가 되어 전통을 더 빛내지 못하고 마지막 졸업생이 돼 가슴이 아프구나.” 슬픔보다는 들뜬 마음이 앞섰던 동기생 종경이와 정수, 진지함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5학년 이진과 4학년 김수진도 이 순간 만큼은 숙연해졌다.
졸업생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과 교직원도 말 그대로 이제 이 학교를 떠난다. CD로 만들어진 졸업앨범엔 다른 학교와 달리 재학생 진이와 수진이도 함께 소개되었다.
사실 진이와 수진이는 인근 근남초등학교 편입이 그리 싫지 않은 기색이다. 음악 체육 등 정규 교과목 학습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학여행 운동회 체험학습 등은 인근 세 학교와 함께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선생님과 1:1 수업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이들끼리 함께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인성을 터득해 가는 것이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죠.” 석관식 교장은 학교 통폐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소규모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빛내자 우리학교 우리 잠곡교” 마지막으로 졸업가와 교가가 이어지는 동안, 마을 주민과 나이 오륙십을 넘긴 동창생들의 목메인 표정에 아이들보다도 더욱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베어있다. “교육정책이 그렇다니 어?수 없죠. 아이들도 좀 더 나은 곳에서 공부한다는데…” 모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 마지막 졸업식을 보러 왔다는 함춘경(62)씨와 7명의 4회 졸업 동창생들은 말할 수 없는 섭섭함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51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폐교하는 잠곡초등학교는 이제 동문(총 768명)들의 추억 속에만 남게 됐다.
삼척ㆍ철원=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