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홍보활동은 병원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병원과 환자 간 상호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입니다.”
22년간 몸담았던 곳에서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사람의 소회 치고는 유달리 힘이 실려있다. 연세의료원 박두혁(60) 홍보부장. 그는 국내 ‘병원 홍보’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1984년 이 병원 홍보 책임을 맡은 이후 줄곧 외길을 걸어왔다.
17일 ‘홍보맨’으로 살아온 20여년을 추억하는 그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당시는 병원 홍보는커녕 ‘홍보’라는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절이었어요. 덜컥 일을 떠맡기는 했는데, 전례가 없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난감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의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어떻구요. 완전히 천덕꾸러기 신세였지요.”
일반인들이 병원에 대해 갖고 있는 권위적, 고압적 이미지를 탈피하는 일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언론에 병원의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경영진과의 의사소통 문제도 넘어야할 산이었다. “경영진은 한정된 임기 내에 성과를 극대화하기를 원합니다. 환자 수가 줄거나 실적이 나빠지면 무조건 홍보 부족을 탓하지요. 홍보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이 아닌 경영을 위한 종합적인 활동으로 인식시키는 부분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90년대 들어 기업적 성격을 가미한 병원들의 등장으로 환자를 고객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과 병원간 친절 경쟁이 확산되면서 그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에게 병원 홍보의 노하우와 체계를 벤치마킹하려는 병원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 겨우 3명의 직원으로 단출하게 시작한 홍보팀도 10명의 어엿한 조직으로 성장했고, 전국적인 병원홍보기관도 탄생했다.
사실 그가 병원 홍보업무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의료전문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의료계와 연을 맺었다. 10여년의 기자 생활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의료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 기회였다. 그때 홍보의 중요성도 절감하게 됐다. 그러던 차 지인의 제의에 주저없이 뛰어든 것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93년 신축한 장례식장 기획을 꼽았다. 당시 장례식장은 환자들의 원성의 대상이었다. 형편없는 시설은 둘째치고 조문객들의 도박, 음주 등 무질서자 판을 쳤다. “심지어 식장 안에서 용변을 보는 일도 허다했어요. 안되겠다 싶어 밤샘조문과 술 반입을 금지하면서 장례 업무가 안정을 찾고 병원의 이미지도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병원 최초로 환자들의 기본권리를 명시해 놓은 ‘환자권리장전’을 선포한 일, 흰색 일색이던 간호복장을 다양화해 역동성을 꾀한 일도 의료계의 선구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업무 역량과 노하우를 탐내는 병원들이 벌써부터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박 부장은 당분간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어요. 이제는 찬찬히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병원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문해줄 생각이다.
후배 홍보맨들을 위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지요. 이런 마음가짐 없이 수익 창출에만 급급할 때 과장광고의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과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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